핫도그 추억
81년 배봉산 자락에 있는 휘경중학교에 입학했다.
청량리 집에서 걸어서 30분 차를 타면 20분.
오르막길을 오르면 주택으로 둘러싸인 학교가 들어왔다.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박씨가 뭍힌 휘경원이 있던 자리여서 휘경동이었지만
당시엔 그 사실을 알리 없었다.
학교는 교과수업 이외의 것은 절대 가르치지 않으니까.
다만 나는 지금도 획이 많은 아름다울휘에 경사경자를 눈감고도 쓸 수 있으니 한문선생이
억지로 수십번 쓰게 한 결과였다.
교통카드가 없던 당시는 버스를 타려면 일반인은 토큰을 학생은 회수권을 내야했다.
100원짜리보다 작은 토큰은 100원 종이로 된 회수권은 50원씩 했던 것같다.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은 너도나도 학교입구에 있는 핫도그집으로 몰려가 핫도그를 사먹었다.
50원에 두 개인데 회수권을 내고 사먹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핫도그 크기는 막대모양으로 지금파는 핫도그보다 작았고 맛은 별로였다.
출출해 먹긴 먹지만 한번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싸꾸려 소세지에 검디검은 기름 탓이었다.
오랫동안 기름을 갈지않아 색이 검었고 그 기름에 구워진 핫도그는 맛이 언제나 씁쓸했다.
지금 아이들 같으면 발길을 끊었을테지만 당시 아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회수권으로 빵집을 갈 순 없었으니. 지금 사먹는 핫도그는 쓰디쓴 맛이없다.
소세지도 좋은 걸 쓰고 기름도 그 때처럼 오래 쓰지 않는 탓이다.
끼니를 굶진 않았지만 제대로 된 간식을 먹을 수 없던 시절.
등하교길 풍경만큼은 아름다웠다.
집집 담장안에 핀 꽃들을 보며 봄을 느꼈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당시의 집들이 거의 사라졌고 자동차 통행은 몇배 늘었다.
핫도그를 팔던 집은 진즉 사라지고 유리건물이 들어서 이질감을 더했다.
2017.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