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사패산 1보루(386m)
순백의 길을 걷는 게 좋다.
신갈나무 단풍나무 잎엔 눈이 제법 쌓여 희게 빛난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1보루가 아닌 2보루 쪽으로 와있다.
2보루는 눈이 내려 위험할 것 같다.
발길을 돌려 1보루를 올랐다.
오늘도 1600년 전 고구려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사는 고향을 그리워 했다.
처는 집을 떠나올 때 둘째를 임신했고 노모는 병으로 누워 있었다고 한다.
소원이라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노모를 봉양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라 했다.
삼베옷을 겹겹으로 입은 병사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목도리라도 있으면 병사의 목에 걸쳐주고 싶었지만
오늘 따라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올라와 줄게 없었다.
병사와 인사를 나누고 산에서 내려오니 배가 고팠다.
밥통에 쌀을 얹고 밥을 지었다.
오늘은 내가 속한 단체의 송년회인데 일을 핑게 삼아 가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싫어서다.
2010년 진주종성중이염 수술을 한 뒤 왼쪽 귀 청력이 삼분의 이 쯤 손상됐다.
두 가지 음이 한꺼번에 들리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술자리에서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린다.
뭐라고?
응.. 뭐?
계속 되묻기가 미안해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는데
술자리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고 만다.
신경을 과도하게 쓴 탓이다.
그래서 왠만하면 찻집이나 음식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찻집에 가면 음악소리 때문에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음식점에 가면
왁자지껄한 소리에 상대방이 뭐라 하는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장애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대신 집에서 나누는 대화 특히 산에서 나누는 대화가 좋다.
자연 속에서 듣는 소리는 너무나 좋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여울물소리 새울음소리...
가까운 날 이들 소리가 잘들리는 공릉천 하구나
한 번 걸어봐야겠다.
2017.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