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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중학교 만화 수업

by 만선생~ 2023. 11. 26.
아이들은 선생님 말소리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온신경을 기울였다.
필기도 열심이었다.
놓친 내용은 옆친구 노트를 보며 확인했다.
아이들은 때때로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 여기서 말하는 무엇무엇이란 무엇을 말하기 위해 쓰이는 건가요? "
 
아이의 날카로운 질문에 선생님은 긴장했다.
 
"응 이건 이래서 이렇게 되고 저건 저래서 되는 거야"
 
질문에 답하면서 선생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업준비를 하면서 혹시나 몰라 확인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대견해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이의 얼굴은 선생님께 인정을 받았단 사실에 웃음꽃이 피었다.
수업종소리가 울려퍼지자 아이들 사이에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수업이 끝난 아쉬움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다음 시간이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교실문을 나서는 선생님의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가벼웠다.
중학교 1학년 만화수업 나흘째.
주제는 뎃셍력을 기르자였다.
뎃셍력을 기르는 방법으로 사진묘사를 들었다.
신문 잡지 사진집에 실린 사진을 보고 그리며 인체 비례를 알고 공간감도
익힐 수 있다는 게 수업취지였다.
아이들에게 준비해간 신문을 나눠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문을 둘둘말아 칼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후 교실바닥은 찢어진 신문들로 가득했다.
열세명 학생 중에 내말에 따라 수업을 하는 아이는 단 둘.
몇몇 아이들은 필기도구조차 꺼내지 않았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적응이 안되었다.
연신 한숨이 나오고 수업은 언제 끝나나 시계만 보았다.
8주 수업 중 스토리만화까지 그리고자 했는데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남은 4주동안 뭘해서 시간을 채워야할지 걱정이다.
수업을 하면서 교사로서 디스토피아가 바로 여기구나 싶었다.
앞에 글은 절망의 세계에서 쓴 유토피아다.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글이다.
만약 내가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면 1년을 못채우고 퇴직할 것 같다.
학교 수업을 나가면서 선생님들 참 짠하단 생각이 들었다.

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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