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이신 가윤성 님께서 제 작품 <<목호의난 1374 제주>>에 대한 리뷰를 써주셨네요.
허락도 없이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목호의 난』 정용연
『목호의 난』 정용연
인간의 여러 욕망이 부딪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선악구도가 뚜렷한 것보다 인물이나 상황 속에 선악이 교차되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의 아이러니가 드러난 작품을 좋아한다. 정용연 작가가 그린 『목호의 난』도 그런 작품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했던가. 때는 원나라 시절. 고려국의 탐라(제주도)에 ‘목호(牧胡)’가 파견됐다. 목호는 숲을 불태우고 풀을 자라게 해 훌륭한 말을 키워냈다. 목호는 말을 기르고 관리하는 몽골인 관리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주원장의 명이 일어나 원을 북쪽으로 밀어냈다. 원이 기울자 고려에서도 공민왕이 부원배(원을 믿고 나대던)들을 숙청한다. 부원배들은 ‘원에 입성하자’고 떠들어대다 공민왕의 칼날에 사라졌다.
명의 창업주 주원장은 변덕이 심하고 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고려에 말 2천 필을 요구했다. 2천 필! 작은 나라에 너무도 가혹한 요구였다. 더군다나 명은 ‘말 2천 필은 탐라에서 나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어쩔 수 없이 공민왕은 탐라에 사람을 보내 목호에게 말을 요구했다. 하지만 목호는 원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명은 원의 원수이다. 목호는 “300필 이상 바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면서 공민왕이 보낸 관리와 병사들을 참살했다.
앞서 고려는 탐라를 가혹하게 착취했다. 그래서 탐라인들은 목호의 통치에 호응했다. 목호는 탐라인들과 섞였고, 70년 이상을 탐라에서 살았다. 탐라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낸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렇다면 목호는 원나라인인가, 탐라인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새도 없이 고려는 탐라 정벌에 나선다. 입 안의 가시를 빼야할 시간이 온 것이다. 고려도 어쩔 수 없다. 원나라는 멀리 북쪽 초원으로 쫓겨간 지 오래고, 대륙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부는대로 춤을 춰야 한다.
목호도 절박하다. 한 필의 말도, 한 치의 땅도 뺏길 수 없다. 그렇다고 ‘대원제국의 전사들’이 항복할 수도 없는 노릇. 고려국에 맞서 분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용연 작가의 『목호의 난』은 일련의 상황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70년 동안 한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 곳의 토박이인가 아닌가? 만약 어떤 한국인 가문이 미국에 정착한지 70년이 지났다면, 그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결론은 처음부터 나왔을지 모른다. 고려국은 크고, 탐라는 작다. 고려군은 다수고, 목호는 소수다.
목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수많은 탐라인들도 목호와 함께 희생됐다. 역사는 반복된다. 탐라에는 오늘도 파도가 치고 있다.
글/ 가윤성 님
'만화 작업 > 목호의난 1374 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호의난 1374제주 논문 (0) | 2024.01.01 |
---|---|
제주 답사 (0) | 2024.01.01 |
목호의 난 1374 제주 (0) | 2023.12.18 |
마니토 (1) | 2023.12.16 |
"목호의 난 1374 제주" 첫 그림 (0) | 2023.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