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까지 몇 편의 영화를 보았을까?
1
근사한 이야기를 들으면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들 한다.
근사한 장면을 보아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영화는 근사하다.
소설, 드라마, 만화, 연극도 근사하지만 영화는 더 특별하다
막대한 자본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때때로 영화를 본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는 몇 편이나 될까?
그리하여 예전에 본 영화들을 하나 둘 기억해내며 적기 시작했다.
마른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꼬꼬마시절부터 봤던 영화를 모조리 불러왔다.
그리고 새로 본 영화를 빠짐없이 적어 나갔다.
리뷰도 쓰기 시작했다.
리뷰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작품 제목과 감독 그리고 배우들 이름을 적었다.
더하여 감동의 등급을 매겼다.
인생 영화라 생각하면 별 네 개.
정말 재밌다 싶으면 별 세 개.
그런대로 재밌으면 별 두 개.
안 봐도 그만인 영화는 별 하나.
그렇게 헤아려보니 총 1,152편이었다.
극장, TV, 비디오, 넷플릭스를 통해 본 영화들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포함했다.
다만 중간부터 본 것은 포함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만 포함했다.
TV문학관이나 베스트극장 같은 TV단막극은 포함하지 않았다.
오로지 극장용으로 제작된 것들만 포함했다.
총 1,153편의 영화 가운데 실사영화가 1,082 편이었고 애니메이션이 73편이었다.
실사영화를 다시 나누면 헐리우드 영화가 462편 한국 영화가 474편이었다.
2
나의 영화보기는 1980년 시작되었다.
제기동 당숙네 집에서 12인치 TV브라운관을 통해 본 서부영화 "세인"이 내가 본 최초의 영화다.
1981년 신문배달을 한 이후론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82년엔 경동극장서 "바늘구멍"이란 첩보영화를 아주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이후 성인이 되어 "바늘구멍"을 다시 봤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세인" 은 내 마음에 아로새길 불멸의 명작이었다.
80년대 본 한국 영화 수준은 어린 내가 봐도 처참하였다.
몇몇 작품들을 빼곤 정말이지 볼만한 게 없었다.
90년대 초도 그랬다.
누가 한국 영화를 보러 가면 수준이 낮거나 애국심이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이 인기를 끌 때 나는 대중을 비웃었다.
한국 영화 따위에 열광하는 수준 낮은 족속들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그런 판단을 내렸다.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바뀐 건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면서였다.
서편제는 예술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아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이 들었다.
멸종된 공룡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도 볼만했지만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서편제도 볼만하였다.
이후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한국 영화의 분기점이었다.
600만 관객이 든 이 영화를 기점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2000년대는 한국 영화의 전성기였다.
한국 영화를 보러간다고 해서 아무도 애국심이 특별하거나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취급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8,90년대와 달리 한국 영화의 소재는 참으로 다양하였다.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동안 금기시 됐던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단지 소재의 다양성 때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탄탄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제작비 또한 커졌다.
제작비 부족으로 찍을 수 없던 장면을 이제는 마음대로 찍게 된 것이다.
감독의 연출능력과 촬영기술도 예전의 한국 영화와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한국 영화의 수준을 올리는데 한 몫 하였다.
한국영화는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한류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 정점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충격이었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의 나라가 아니었다.
세계의 중심에 한국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 영화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한 것이었다.
이같은 한국 영화의 성장은 감상자인 나에게도 선택의 폭을 넓혔다.
헐리우드 영화 위주의 감상에서 한국 영화로 옮겨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는 이루어졌다.
2019년 무렵 한국영화 감상 편 수가 헐리우드를 넘어선 것이었다.
(실사 영화만. 애니는 제외)
상상도 할 수없는 일이었다.
2023년만 해도 그렇다.
한국영화는 "한산"과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5편을 본 것에 반해 헐리우드
영화는 3편을 보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한국영화가 헐리우드 영화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엔 한국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가 있어 더 찾을 뿐이다.
헐리우드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이같은 실사 영화의 성공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한국 애니를 잘 안 본다.
상영관에 어렵사리 내걸린 애니를 잘 찾지 않는다.
56년을 살아오면서 본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로보트 태권V, 블루시걸, 원더플데이즈, 마당을 나온 암탉, 마리이야기까지 다섯 편이 전부다.
한국 애니는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가 없다.
일본 애니의 하부구조로 존재해왔을 뿐이다.
한국 애니의 대부분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하청작업이었다.
스스로 기획하고 제작할 엄두를 못냈다.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길들여져서이기도 하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뽀로로를 비롯하여 아동용 애니메이션들이 크게 성공하여
일본 애니의 점유율을 낮췄다.
들으니 요새 아이들은 일본 애니보다 한국 애니를 더 많이 보며 자란다고 한다.
고무적인 일이다.
이렇게 내가 본 한국 영화의 수는 애니 5편을 포함하여 총 478편이다.
3
한국영화와 헐리우드 영화 다음으로 많이 본 것은 홍콩영화와 중국 영화다.
세어보니 모두 98편이다.
8.90년대는 홍콩영화의 전성시대였다.
영웅본색을 필두로 명작들이 줄을 이었다.
나 역시 비디오 가게에서 홍콩 영화들을 많이 빌려 보았다.
그만큼 재미가 있었다.
대여료가 아깝지 않았다.
천녀유혼 같은 작품은 비디오 테이프를 직접 사 열 번 이상 보았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영화는 빛을 잃었다.
끝없는 자기복제로 마지막 남은 목숨 줄을 유지할 이어갈 뿐이었다.
중국은 세계 제 2의 경제 대국에 맞는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는 지리멸렬이다.
검열로 인해 고전 사극을 빼곤 볼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나 역시 중국 영화를 잘 안 본다.
2022년과 2023년엔 중국 영화를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은 더 처참하다.
지금까지 홍콩과 중국에서 만든 애니는 단 2편을 보았으니 말이다.
4
다음으로 많이 본 것은 일본 영화다.
총 85편 가운데 실사영화가 65편 애니메이션이 20편이다.
한 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미국을 위협했던 일본은 자국의 문화 콘텐츠를
세계 각국에 수출하였다.
그 가운데 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식민지였던 이웃나라 한국은 일본 문화에 포위돼 일본풍의 패션, 음악, 만화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만화는 일본 식민지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스타일이 일본만화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일본 만화를 베끼는 만화가가 부지기수였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80%이상 일본에서 만든 애니를 소비하였다.
영화 역시 영향력이 막강하였다.
주위를 돌아봐도 일본 영화를 즐겨보는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일본 영화들을 꽤 많이 찾아봤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시대극으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와 "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같은
작품도 명작이다.
하지만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지며 일본영화도 기울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영화제작자들은 모험을 하지 않았다.
오리지널 스토리보다 인기가 검증된 만화의 판권을 사오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결과는 질적 하락이었다.
현재 일본 영화는 가늘다.
선 굵은 영화가 없다.
사회적 메시지는 없고 개인 서사에 머물고 있다.
그에 반해 애니는 조금 다르다.
디즈니와 더불어 세계 애니메이션을 양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애니를 열심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일본 만화 영향 아래 자랐지만 어느 기간을 제외하곤 일본 애니에 대한 관심을 크지
기울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미랴자키하야호의 "센과치히로의 모험"이나 오토모가츠히로의 "아키라"같은
작품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5
이제부터는 기타 영화다.
유럽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과 중남미 국가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 영화들이다.
이들 기타 나라에서 만든 영화를 총 58편 보았다.
그 가운데 실사영화가 56편이고 애니메이션이 2편이다.
유럽의 문화 산업은 프랑스가 주도하는데 역시 프랑스 영화를 가장 많이 보았다.
다음은 영국이다.
스페인 이태리가 그 뒤를 잇는다.
볼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화 산업도 그 규모가 크다.
덕분에 한국에도 꽤 많은 인도영화가 수입되었다.
인도 영화도 나름 재밌다.
기타 이들 나라에선 만든 애니는 총 2편을 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캐나다 사람 프레드릭 백이 만든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7
유치함의 대명사였던 한국영화의 성장은 놀랍다.
그렇다고 헐리우드를 넘어서 감상을 한 건 아니다.
디즈니와 드림웍스 그리고 픽사에서 제작한 43편의 애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본 헐리우드 영화의 수는 507편이 되고 한국 영화의 수는 476편이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실사 영화에선 헐리우드 영화보다 한국영화를 더 많이 보았다.
8
이제부터는 영화의 관람형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나는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가장 많이 보았다.
나머지는 TV브라운관과 극장 그리고 다운로드와 넷플릭스 와 같은 OTT다.
요즘은 주로 파일을 다운로드 해 본다.
영화는 영상으로 구현되는 종합 예술이다.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봐야 제 맛이 난다.
아무리 모니터 화면이 좋아도 스크린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스펙타클한 영화일수록 극장에서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극장을 많이 찾지는 않았다.
조금 기다렸다가 비디오로 출시됐을 때 보는 게 경제적이어서다.
또한 비디오테이프와 컴퓨터 파일은 돌려보기가 가능하다.
미처 놓치고 지나간 장면들을 언제든 다시 볼 수가 있다.
우리같이 스토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선 압도적 화면의 스크린보다 모니터 화면이 낫다.
스토리를 좀 더 객관화하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총 37편의 영화를 보았다.
헐리우드 영화는 애니 포함해 35편이다.
홍콩과 중국 영화는 8편 일본영화는 1편 기타는 3편이다.
이를 합하면 84편의 영화를 극장 좌석에 앉아 관람한 것이다.
영화상영 시간을 2시간으로 계산하면 2,304시간
동안 영화를 보았고 날짜로 계산해보면 96일 동안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석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다.
하지만 실재 시간은 훨씬 더 길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있다.
영화를 본 뒤 리뷰를 쓰거나 읽는 시간도 만만찮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몇 차례씩 보곤 한다.
"세인" "마농의 샘" "용서받지 못한 자" '천녀유혼'
'첩혈쌍웅" "가타카" "스캔들' "가케무샤' '터미네이터'"써머스비' 등이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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