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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2

by 만선생~ 2024. 3. 24.
 
 
 
 
 
 
 
 
 
월출산 2
월출산을 처음 오른 건 1998년 오토바이로 전국 여행을 하면서다.
대처승이 기거하던 천황사를 거쳐 구름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비가 온 뒤라
구름이 자욱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구름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것이 실로 장관이었다.
평생에 한번볼까 말까한 풍경이었다.
거기다 올라오는동안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으니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통천문을 거쳐 정상인 천황봉에 올랐다.
신선이 아니면 머물지 않을 것 같은 이 산!
하지만 일시에 분위기를 깬 것은 먼저와 있던 관리사무소 직원 두사람이었다.
이들은 도시락을 먹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사람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 험준한 산을 마치 안방드나들듯 하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내게 도시락을 나눠주며 산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산다운 산을 오른건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해발 300미터 높이의 구룡산이
전부지만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슬리퍼 신은 이가 말하였다.
산다운 산을 오르시라.
그러면서 지리산을 추천하였다.
그 곳에 올랐을 때 비로소 산이 무언지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토록 힘들게 오른 월출산이 지리산에 비하면 별 거 아니란 듯한 말에
나는 살짝 감정이 상했다.
지리산이 뭐라고?
한편으론 지리산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하였다.
그리고 십년 쯤 지나 2박3일로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무리한 산행탓인지 한동안 관절 고생을 하였다.
지리산은 산이 크고 깊다.
그에 반해 경관이 빼어나지 않다.
대신 기대어 살기 좋은 산이다
누구라도 지리산만 들어가면 굶어죽진 않는다란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러하기에 빨치산들은 지리산에서 최후의 항쟁을 이어갔던 것이다.
어제 월출산을 오르며 생각하였다.
여기서 빨치산들이 무장투쟁을 벌였다면 곧 토벌당했겠구나 싶었다.
온 산이 바위투성이라 숨을 곳이 없다.
하지만 경관은 월출산이 윗길이다.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두터운 지리산보다 칼같이 날이 선 월출산이 좋다.
두번재 월출산을 오른 건 2018년 권숯돌 작가와 함께다.
경포대를 들머리로 정상인 천황봉을 올랐다.
산을 오르내리며 적지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공동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만 도덕적 굴레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샘은 강진에 자리를 잡은 뒤 월출산을 두어번 더 올랐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권샘이지만 외할아버지가 영암 분이라 했다.
한국전쟁 당시 월북을 하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어린아이였던 권샘 어머니는 돌고 돌아 부산에 있는 친척 집에서 자라게 된다.
사진을 보니 외할아버지는 지주 출신의 인텔리였다.
자신의 계급 내에서 충분히 잘먹고 잘살수 있었을테지만 외할아버지의 선택은 달랐다.
인민해방이 목표였고 그 길을 위해 삼팔선을 넘었다.
그 같은 이유로 별다른 연고가 없는 강진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세번째 오르게 된 어제 월출산.
구름다리를 타고 정상인 천황봉에 올랐다.
하산은 바람폭포 코스로 했는데 2018년 권샘과 걷던 길이었다.
계절도 이맘 때였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사스레피나무와 동백나무 숲을 보니 슬펐다.
권샘은 더 이상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하는 구나 싶었다.
세상에 없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유한한 삶.
언제가 가게 될날을 생각하며 다음 약속 장소를 향해 자동차 악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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