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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정가네소사

상황

by 만선생~ 2024. 9. 4.
 
 
 
 
상황 1
만나면 이상하게 내 기분에 스크래치를 내는 친구가 있었다.
만나는 자리에서도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물론 집에 들어와서도
불쾌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무슨 악의를 가지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하여튼 기분을 상하게 하는 친구.
방법은 하나였다.
만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한동안 소식 끊고 지내는데 그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에
정가네소사 1,2,3권을 샀다고 올린 것이다.
순간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눈녹 듯 사라졌다.
아니 고마워서 볼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후 그 친구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상황 2
오랫동안 알아온 1년 후배가 있다.
알아온 세월을 헤아려보면 20년이 넘고 한 때는 작업실을 같이 쓰기도 하였다.
후배가 지방에서 결혼할 땐 지방으로 내려가 축하를 해주었다.
후배와는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홍대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함께 만화 전문 서점인 한양문고에 갔다.
나는 후배에게 매장에 진열돼 있는 정가네소사를 가리키며
얼마 전 상받은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반응이 시큰둥했다.
대신 일본 만화책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그림이 화려한.
 
어느 날 후배와 통화를 하며 내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단다.
나는 후배에게 책을 사라고 했다.
작업실 생활까지 함께 해온 동료로서 그 정도는 기본 아니냐며.
나라면 동료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궁금해서라도 책을 사서
보겠단 말을 덧붙여가면서 말이다.
다행히 후배가 책을 사겠단다.
한 참 뒤 후배와 다시 통화를 했다.
책을 샀냐고 물으니 안샀단다.
직장을 잃은 뒤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지기도 하지만 평소 책을 잘 사지
않는 듯 했다.
그렇다고 후배가 영영 돈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은 끝끝내 사고 마는 성격이다.
후배가 요새 많이 힘들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힘들다.
막연하게 자기가 이런 걸 하면 좋겠단 생각만 있지 그를 위한
구체적 행동은 하나도 없다.
 
무엇이 후배를 그토록 힘들게 할까?
원인이야 많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동료작가에 대한 관심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책을 한 권 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 말이다.
후배가 언제까지 대작 만화의 환상을 쫓을 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대작만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동료작가의 작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꿈은 영영 꿈으로만 남을 것이다.
잡을 수 없는 먼 꿈보다 이룰 수 있는 작은 성취가 중요하다.
동료작가의 작업을 보며 자기가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
가늠하며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후배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동료로서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20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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