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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정가네소사

할아버지 묘 상석

by 만선생~ 2024. 9. 26.
 
 
 
 
 
 
 
 
 
추석날 식구들과 할아버지 산소에 가 인사를 드렸다.
자식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위해서나 손자인 우리 형제들 위해 해주신게 아무 것도
없는 할아버지다.
대신 후처 자식들과 손자손녀에겐 애정을 많이 드러내시었다.
그래서 내가 형들에게 '해준 것 하나없는 할아버지를
위해 뭐하러 제사를 지내고 산소를 찾느냐' 하자
피와 뼈를 물려주지 않았냐고 한다.
그렇다.
할아버지가 없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
할아버지 사랑을 전혀 못받고 자랐지만 공경의 대상이란 건 변하지않는다.
상석은 작은아버지 주관아래 재작년 만들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한자세대라 비문을 모두 한자로 썼다.
상석 앞면엔 할아버지 본향과 함자를 해방이 되던해 만주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본향과 함자를 썼다.
그 옆으론 방위를 뜻하는 간좌 [艮坐]를 아주 작게 썼다.
찾아보니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간방인 동북쪽을 등진 방향이나 자리라고 나와 있다.
상석 옆으로는 전처인 우리 할머니 자녀와 며느리 이름 그리고 후처에게서 낳은 아들 이름과
며느리 이름이
쓰여 있다.
딸들과 사위 이름은 쓰지 않았다.
후처인 할머니 이름도 표기를 하질 않았다.
대신 할아버지 함자 뒤에 대실이라 썼으니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형 말로는 첩을 일컫는 말이라는데 할머니는 첩이 아니라 후처였다.
조선시대 비문을 보면 후처는 전처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어쨌든 이러저런 사정으로 후처인 할머니는 묘에 모시지 않고 전처인 우리 할머니는
시신이 없으므로 허묘를 써서 모셨다.
할아버지를 모신 곳은 작은 할아버지 땅이다.
상석도 작은아버지가 주관하여 세웠다.
작은 아버지 뜻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는 우리 할머니 집안을 어렵게 생각하여 할머니에게도 그닥 애정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후처인 할머니를 아주 사랑하였다.
전처에게서 낳은 자녀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지만 후처에게서 낳은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에겐 애정을 많이 표시했다.
물질적으로 딱히 해준 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3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인 <<정가네소사>>엔 할아버지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순호당숙' 편에 얼굴을 잠깐 비칠 뿐이다.
어쨌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자는 산자대로 조상을 추모할 뿐이다.
(작은 상석은 산천에 있는 귀신들에게 음식을 바치는 용도로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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