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이 사라졌다.그 때마다 배를 깔고 일어나 머리맡에 세워둔 스텐드 등을 켠다.
중학교 시절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 살 때 나는 내 나이 또래가 앉을 정도의 천장이 낮은 다락방을
고쳐서 혼자 지낸 적이 많았다.
그 때부터 만들어진 배깔고 책보던 습관이 아직 몸에 베어 눈 나빠진다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였지만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셨는데도 버릇없이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깨인 잠 덕분에 지난주 주문해서 도착한 정용연 작가의 명품만화 '정가네 소사'를 밤새 보며 읽고 감동을 선물처럼 담고 있다.
이른 새벽 수탉도 단잠에 빠져있는 시간,나의 삶과 유사함에 공감을 받고 아버지 시대 그리고 할아버지
세대의 고난과 역경에 감히 가늠하지 못할 그 시대만의 풍파에 잠시 올라타고 있다.
삼대에 걸쳐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이렇게 세세하게 담고 그리며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부인을 많이 두셨을까? 작은 섬 어부이셨던 할아버지는 왜 큰아들만 위하셨는지?
단칸방에 살며 고생하며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 그리고 네 살 때 나를 떠난 어머니, 등등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가시 덩쿨이 뻗어있는 숲을 해쳐가며 수없이 긁힌 상흔이 있는 한 인생의 굴곡사가 그려진 만화를 보고 있다.
펜촉으로 긁힌 작가의 나이는 나보다 아래지만 인생 굵기의 질김과 단단함이 이미 나를 너머서 있다.
감사하게도 오랜만에 정말 만화를 문학 작품으로 단편 같은 중편의 영화를 보고 있듯 새벽을 새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형님,만화가 이희재의 단편 '김종팔 가정소사'와 오세형 선생의 '한국 단편소설과의 만남' 이라는 작품을 접했을 때 처럼 감동을 다시 받고 있다.
그림체에서 작가의 순수성을 알게 하며 글에서 질기디질긴 어머니 세대의 고통과 자식들을 위해 한겨울 비단을 팔러 다니던 눈 쌓인 외로운 시골 눈길에 족적이 남아 있다.
만화를 보며 생각했다. 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그랬을까?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사셨을까?
새벽잠을 멀리하고 결국 세 권의 작품을 모두 읽고 출근길로 나갈것이다.페친들은 판타지와 자극적 만화의 홍수 속에 이런 금덩이 같은 만화가 있다는 걸 아시고 꼭 구독하시라고 추천하는 바이다.
정가네 소사에는 시인 백석이 보이고,화가 이중섭이 보이고 시인 김소월이 보인다.
그만큼 우리 백성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려내는 동학 이야기가 묻어 있고 남과 북의 비극과 격변의 이야기를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삼 대가 가진 우리 모두의 아득한 이야기를 7년 동안 세 권의 단행본에 풀어낸 작가의 노고에 정말 감탄을 하며 그 시간에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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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상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하늘에 붕 뜬 기분이랄까.
생활고와 싸우면서 힘들게 한컷 한컷 그렸던 7년세월을 보상받는 것 같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물론 지금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이 리뷰로 인해 한 주를 기쁘게 보낼 수 있겠다.
또 이 주엔 일요신문에 용서인이란 작품 첫회가 실리기도 하고...
암튼 기대와 설렘이 있어 좋은 나날이다.
20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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