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64 야와라 야와라 우라사와 나오키가 쓰고 그린 "야와라"를 몇 권 주문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 주문을 한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표지 그림에 혹했다. 이렇게 여자를 밝고 사랑스럽게 그리다니. 우라사와 나오키의 필력이 진정 부러웠다. 그리고 한 편으론 너무 칙칙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밝게 살고 싶다. 밝은 것을 그리고 싶다. 내 그림이 칙칙하다고는 생각안해봤는데 그리 밝은 것도 아니다. 하다보니 어쩔 수없이 어두운 것들을 그린 측면도 있다. 오늘 문득 "야와라" 표지 그림을 보니 밝음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조선시대 여인을 넘어 현대 여인들도 그리고 싶다. 그 것이 십대 소녀라면 더 좋겠다. 나도 십대 소녀의 풋풋함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싶다고해서 당장 그려지는 것은.. 2024. 3. 25. 군산 여행 5 히로쓰(廣津)가옥 히로쓰(廣津)가옥 별다른 정보없이 군산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걸었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들이 몇집 건너 하나씩 보였다. 이른바 적이 남기고 간 재산, 즉 적산 가옥이었다. 적산가옥을 지날 때나다 일본에 있는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점은 동국사와 히로쓰 가옥이었다. 히로쓰가옥은 일본인 거주지역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가옥인 듯 했다. 다행히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나는 집들에 관심이 많다. 한옥도 좋아하지만 일본식 집들도 좋아한다. 한옥만큼이나 일본식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적산가옥이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찎곤한다. 히로쓰 가옥은 내가 본 적산 가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잘돼 있었다. 특히 정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정원을 .. 2024. 3. 25. 군산여행 4 동국사 동국사군산에 동국사란 절이 있다.1932년 일본 조동종이란 종파에서 세운 절인데 국내 유일(?)의 일본식 절이다.광주 송정리에 있는 금선사도 일본식 건물이지만 동국사완 조금 다르다.해방 후 조계종에서 적산가옥인 신사를 불하받아 세웠고 그래서 절이란 느낌이 그닥 들지 않는다.동국사는 일제 강점기 금강사(錦江寺)라 불렸다.일본식 발음으론 긴코지다.절이 들어서 있는 금광동 일대가 일본인 거주 지역이라 일본인 신자들이많아 찾아들었을 거다.대한 불교 조계종 동국사는 일본식 절이란 특징 때문에 군산을 찾는관광객들이 꼭 한 번 거쳐가는 코스가 되었다.내가 동국사에 들어섰을 때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말 그래로 종무실과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일본식이었다.마치 일본의 어느 절에 와있는 것 같았다.절을 찾.. 2024. 3. 25. 군산여행 3 이성당 빵집 이성당 빵집별다른 정보없이 군산 근대 문화거리를 걷다빵집을 발견했는데 이성당이다.언듯 듣긴 했으나 눈으로 보긴 처음이었다.건물은 낡아보였으나 문은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 하였다.한마디로 문전성시다.비결이 뭘까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많았다.계산대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한산한 여느 빵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이 정도 손님이면 재벌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지 않을까 싶었다.평일에도 이런데 주말엔 어떨까 싶었다.마침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출출하였다.단팥빵 하나에 2,500원이어서 두개를 사서 먹었는데 맛있었다.더 먹고 싶었다.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무위키를 검색하니 이성당 역사가 나왔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었다.예상대로 빵집을 연건 일본인이었고 해방후 조선인 이석.. 2024. 3. 25. 군산 여행 2 채원병 가옥 채원병 가옥 여행의 즐거움은 의외성에 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뜻하지 않은 곳을 가게되는. 인생도 예정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듯 여행 또한 그렇다. 관아에 관심이 많아 임피 관아를 둘러보고 있을 때다. 관아의 흔적이라고는 이방청과 연지밖에 남아있지 않아 허망해 하고 있는데 낯선이가 다가와 채원병 가옥을 가보라 한다. 인근 함라 삼부자집은 가봐서 알고 있다. 하지만 채원병 가옥은 금시초문이다. 그 이가 말하길 예전엔 엄청 큰 집이었는데 동(혹은 한국 전쟁)학 때 많이 불살라 없어지고 몇 채만 남았단다. (중간 생략) 채원병 가옥은 임피 관아에서 멀지 않았다. 한데 와보니 담이 없다. 들어서자마자 사랑채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남아 있는 건물들을 미루.. 2024. 3. 25. 군산 여행 1 임피 노성당老聖堂 임피 노성당老聖堂 지방에 가면 관아를 찾아보곤 한다. 지금은 군산에 속해있는 임피를 찾은 건 '노성당老聖堂'이란 관아 건물 때문이다. 객사와 동헌같은 중심 건물은 온데간데 없고 부속 건물인 이방청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헌데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다. 노성당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하길 관리하는 직원이 10시 쯤 들린뒤 돌아가곤 한단다. 전화를 하려 해도 전화 번호가 없었다. 여산 동헌에 갔을 때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 면사무소 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는데. 담너머 노성당을 바라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이 건물을 이방 혼자 썼던 것일까? 아니면 이호예형공병방이 함께 썼던 것일까? 이방 혼자 썼다면 나머지 다섯개 건물이 더 있었다는 것이고 육방관속 모두 함께 썼다면 건물이 너무 비좁다... 2024. 3. 25. 김제 여행 4 금구향교 2 금구향교 2 항교의 총 책임자를 전교라 한다.전임 전교인 배현식 어르신은 47년생으로 올해 나이 일흔 일곱이다.어르신께 내 고향이 와룡이라고 하니 그 동네를 훤히 알고 계셨다.사시는 곳이 황산면 상리인데 용지면 와룡리와는 그리 멀지가 않다.용지 와룡은 하랭이라 불린다.하랭이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극진가라데 창시자인 최배달이다.본명은 영의로 최승현의 네째 아들인데 형제들 또한 기골이 장대하다.최영의의 바로 윗형인 최영범씨는 우리 아버지와도 친분이 깊었다.배현진 어르신은 최씨 문중을 훤히 다 꿰고 계셨다.최영의 부친인 최승현옹 즉 최면장의 키가 크고뼈대가 굵었다는 것을 말하였다.무면허 의사였던 아버지는 최면장 집으로 찾아가 링겔주사를 놔드리곤 하였다.어머니 말로는 우리집 가까이 등이 굽은 채 산책을 오.. 2024. 3. 25. 김제 여행 3 금구 향교 1 금구 향교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만경현과 금구현은 김제로 강제 편입되었다.원님이 다스리는 고을에서 일개 면이 된 것이다.이후 두 고을은 농촌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퇴락의 길을 걷는다.김제 원평은 본디 금구현이었다.김제와는 생활권이 완전 다르다.그 것을 강제로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다.김제 원평 집강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어 찾은 곳은 금구향교다.금구관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향교만 남았다.흉포하기 이를데 없는 일제도 유림의 눈치를 보느라 향교를 없애지 못했다.그만큼 지방사회에 강력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세월이 흘러 향교엔 늙은이들만 남아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시간이 좀 더 흐르면 문화재로서만 남을 판이다.금구 향교 역시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퇴락해 있었다.다행히도 어.. 2024. 3. 25. 김제 여행 2 김제 관아 김제 관아 내 고향 김제에 가면 김제 관아를 둘러보곤 한다.조선시대 관아는 지방의 치소다.그 수만해도 300개가 넘었다.김제는 종5품인 군수가 다스리는 고을이다.객사 동헌 내아 작청 향청 교방청 사령청 옥 등 십여 개의 건물이 있었다.관아에 살던 이들만 해도 고을 수령을 비롯해 100명이 넘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동헌과 내아 그리고 파금각이란 정자 뿐이다.그럼에도 김제 관아는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 많다.그만큼 관아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철저히 파괴되었다.조선시대 김제 군수를 역임한 몇 이었을까?확인을 해보지 않아 모르겠다.참고로 제주 목사의 수는 250명 쯤 된다.역대 김제 군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정담인 것 같다.김제 군수 정담은 임진왜란 때 웅치 전.. 2024. 3. 25. 이전 1 ··· 304 305 306 307 308 309 310 ··· 3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