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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초파리 1

by 만선생~ 2023. 11. 16.
초파리 1

 

어느날 집에 초파리가 들끓었다.
싱크대, 거실, 천장, 화장실, 방, 현관 곳곳에 초파리가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며칠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놔뒀더니 그렇게 되었다.
작업을 하느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쓰레기 봉투를 묶기만 해도 되는데 그게 귀찮아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비상 상황임을 직감한 난 부리나케 마트로 달려가 해충 살충제인 홈키파를 사왔다.
하나 둘 세개 네 개...
뿌려도 뿌려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모기에 뿌렸를 때처럼 바로 고꾸라지지 않았다.
몇 번을 뿌려도 계속 날아다녔다.
질겨도 이렇게 질길 줄은 몰랐다.
급기야 홈키파 연기에 내가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초파리는 12일 정도를 산다고 했다.
젖은 음식을 좋아하고 습한 곳에서 서식한단다.
일단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했다.
놈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애야 한다.
하여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꼭꼭 묶어 보관했다.
여의치 않을 땐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홈키파를 뿌려대기 며칠.
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놈들은 여전히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문득 어린날이 생각났다.
여름 철 면소재지 어느 식당에서 보았던 끈끈이.
천장에 매단 끈끈이엔 수많은 파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리 벗어나려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날개만 퍼득일 뿐이었다.
동네 마트엔 끈끈이를 팔지않았다.
다이소에 달려가니 끈끈이가 있었다.
끈끈이(트랩)를 만원어치 사 놈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놓아 두었다.
머지않아 놈들은 냄새에 이끌려 하나 둘 끈끈이에 달라붙을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수많은 초파리가 끈끈이에 달라붙어있는 것을 상상하며 끈끈이를
확인했으나 단 한마리도 붙어 있지 않았다.
허망했다.
놈들이 마치 나의 계획을 알아차린 듯 하였다.
계획을 다시 수정해 마트에 가 홈키파 대량구매했다.
돈이 아까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물량으로 조져야 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놈들에게 내성이 생겨 안죽을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나의 하루 일과는 홈키파를 뿌리는 일로 시작해 홈키파를 뿌리는 일로 끝을 맺었다.
얼마나 놈들을 죽이는데 열중했는지 꿈에서도 초파리가 보일 지경이었다.
생명은 모두 귀하다.
조상들은 마당에 뜨거운물을 함부로 뿌리지 않았다.
스님들은 땅에 있는 생명을 생각해 발걸음을 함부로 걷지 않았다.
나 역시 이유없이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놈들은 다르다.
하루빨리 박멸을 시켜야했다.
그렇게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놈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늘은 총 세마리를 보았는데 모두 홈키파를 분사해 죽였다.
한마리를 몇번씩 분사하니 아무리 질긴 놈이라 하여도 살턱이 없다.
오늘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눈을 부라리며 놈들을 찾아낼 것이다.
결산을 하자면 홈키파를 열세 개 샀고 트랩은 만원어치를 샀다.
2000원을 주고 산 액체 트랩엔 열흘동안 총 세마리가 걸려들었다.
끈끈이 8개엔 총 네마리가 걸려들어 유인 효과가 보잘 것 없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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