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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국내 2 경기

베트남 직원들과

by 만선생~ 2025. 2. 23.
 
 
 
 
 
 
 
 
 
 
 
2010년 몇달동안 동생 회사 일을 도왔다.
나도 어렵고 동생도 아주 힘든 시기였다.
동생은 한국인 직원 두사람과 베트남 직원 몇을 썼는데
다들 힘들다고 징징거려 골머리를 앓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는 늘 동생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보다 말이 통하는 한국인을 쓰는게 훨씬 나았다.
하지만 생산직 한국인 직원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나는 생산라인에서 베트남 여성인 니얀, 리엔과 함께 일했다.
둘은 베트남 소수민족 출신으로 고향 친구였다.
둘 다 베트남을 떠나오기 전 한국어 학원을 다녔으나 한국어가 서툴렀다.
불루, 그린, 스카이 등등의 기초적인 영어 단어도 몰랐다.
주로 바디 랭귀지에 의지해 대화를 나눌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주말을 맞아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과 오산 독산성을 놀러 갔다.
니얀과 리엔은 유명 관광지가 아님에도 너무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와 처음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고 한다.
특히 사진 찎는 걸 아주 좋아했다.
한국인 직원은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밥값을 모두 계산했고 커피값도 내었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 기기가 마땅치 않았다.
사진을 전해줄 방법이 없어 시내 사진관으로 가 니얀과 리엔이 나온
사진을 모두 현상했다.
현상료는 내가 지불했다.
나는 그녀들이 한국에서 특별한 추억을 갖기 바랬다.
그래서 니얀과 리엔에게 주말에 서울 경복궁을 가보라하니 엄두를 못냈다.
그러면서 한사코 나와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냥 그녀들에게 시간을 내줄 수는 없었다.
나아가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힘들다는 소리를 열두번 쯤 하는 니얀과 리엔.
그녀들은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마도 조건이 좀 더 좋은 회사로 옮겼을 것이다.
다음해 나는 가족들과 패키지로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 수학여행으로 하롱베이에 다녀왔었다는 니얀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경주나 제주도를 가듯 베트남 사람들은
하롱베이를 가는 것이었다.
*글로는 느낌이 안와 그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다.
이 것도 초상권 침해가 되려나?
동생 회사는 10년 사이 직원 50명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활은 그닥 나아지지 않았다.
실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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