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김장을 하여 집에 가보니 조카가 와 있었다.
둘째 형이 낳은 사내 아이다.
재수를 하며 수능을 보았는데 살이 쏙 빠져 몰라볼 지경이었다.
키가 멀대같이 커 키를 물으니 188이란다.
우리 형제들 모두 중간키를 넘지 못해 콤플렉스에 시달렸는데 이리 키가 크다니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게 틀림없었다.
아니 유전자는 같다.
다만 먹는게 달랐을 뿐이다.
나도 20년 늦게 태어나 지금 아이들처럼 먹고 자랐으면 좀 더 크지 않았을까?
내 키를 볼 때마다 시대를 잘못만나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어딜 가나 작은 친구들은 있지만 말이다.
부모의 바람은 누구나 똑같다.
자신의 아이가 공부를 잘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 경제적 어려움없이 잘 살아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공부만큼 가성비가 좋은 것도 없다.
예체능 같은 경우엔 경쟁률이 훨씬 더 세다.
소수만이 일반인에 준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는 이들은 페센티지 0.01에 달하는 극소수다.
물론 이들 모두 공부를 등한히 한 건 아니다.
공부는 재능에 날개를 달아 더 높이 날게 해준다.
무엇보다 한 번 익힌 지식은 머리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설사 잊어버려도 조금만 노력하면 다시 꺼내쓸 수가 있다.
작은형 바람대로 조카 아이의 공부 머리가 아주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거다.
돌아보면 공부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반 아이와 똑같이 문제가 주어져도 이해하는 속도가 아주 느렸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다.
가방끈이 짧은 이유다.
그에 반해 조카는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버텼다.
부모의 기대가 있으니 포기할 수도 없었을 거다.
이어 재수를 감행했다.
머리좋은 친구가 문제를 푸는 건 그리 힘들지 않다.
도리어 즐거운 일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갈 때마다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머리가 아주 상쾌한 것이다.
반면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 친구는 문제를 푸는 게 힘들다.
머리좋은 친구에 비해 두 배 세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문제를 풀 수 있다.
조카의 살이 쏙 빠진 건 우연이 아니다.
누구라도 힘들었겠지만 조카의 모습을 보며 많이 힘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은 경쟁의 연속.
아무리 경쟁없는 생활을 원하다 해도 경쟁을 피할 수가 없다.
과거 인류가 그랬고 현생 인류 또한 경쟁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다.
수능은 인생의 한 지점에서 치루는 통과의례다.
앞으로 펼쳐질 삶을 결정하는 갈림길이다.
집을 나서는데 조카가 김장한 김치를 들어준다.
짐이 훨씬 가볍다.
든든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차로 아파트단지를 나서는데 인사를 어찌나 정중히 하던지...
차를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조카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마음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