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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안춘회 선생님

by 만선생~ 2023. 12. 21.

 
 
열여덟살 때다.
한 만화가선생님께 독자투고를 하며 편지를 썼는데 답장이 왔다.
세상에...
만화가 선생님께 직접 편지를 받다니.
날아갈 듯 기뻤다.
이어 독자투고와 함께 편지를 썼는데 답장이 또 왔다.
편지만 온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사인이 담긴 책과 함께.
역시 날아갈 듯 기뻤다.
그리고 얼마뒤에 내 그림이 책 뒷장 독자란에 실리은 영광을 누렸다.
그 것도 다른 투고자들 그림 가운데 가장 크게.
나는 용기를 내어 만화가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만화가 안춘회 선생님과 첫 만남이다.
독자란 투고에 실렸던 만화는 도시의 파파라기란 작품인데 기업만화다.
듀카드 더크란 특허 제품을 두고 기업들간 음모와 
배신이 펼쳐지는 이야기로 스토리도 재밌지만 그림이 너무 너무 좋았다.
들으니 동료인 조성계 작가도 도시의 파파라기 그림에 반해 안춘회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문하생이 되지 않았다.
자로 배경을 그리는 기능적인 일이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또 눈도 안좋아 장시간 배경을 그리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군휴가를 나와 선생님을 찾았다.
뜻밖에도 선생님은 본명을 버리고 조남기란 필명을 사용하였다.
매니아층을 형성하던 그림은 대중적인 그림으로 바뀌었다.
화실 규모도 커졌다.
청춘비망록이란 작품이 히트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빠진 것이다.
수요가 많아 B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본소 만화의 절정기에 선생님은 최고 대우를 받는 작가가 되어 계셨던 거다.
군제대후 선생님을 한 두번 찾아뵈었지만 이후엔 찾아뵙지를 않았다.
작품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니 볼 낯이 없었다.
작품이 없는 만화가는 투명인간이 아닌가.
아니 만화가란 이름도 내려놓아야 했다.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6년 세월 만화계 바깥세상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깥 세상도 만만치 않아서였다.
만화계로 돌아온 난 실처럼 가느가란 희망을 믿으며 오랜세월을
견디며 지금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소식없이 지내던 선생님을 다시 뵌 것은 작년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선생님께선 고맙게도 나를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로 기억해주셨다.
그제는 선생님께 책을 보내드리겠다며 주소를 적어달라고 하자
선생님께선 그러지 말라신다.
고생해서 만든 책인데 사야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강권을 하여 주소를 받아적은 뒤 오늘 책을 보내 드렸다.
만화가의 꿈을 간직한 열여덟살 소년.
그 소년이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처음 찾아뵈었던 작가분께 책을 보내 드리니 이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 싶다.
힘들다고 만화를 포기했으면 맛보지 못했을 기쁨이다.
선생님께선 다음달 사무실을 옮기니 그 곳에서 얼 굴 한 번 보자고 한다.
선생님이 기억하는 이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살부터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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