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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권샘

권숯돌 작가가 떠난 뒤

by 만선생~ 2024. 2. 19.

권유선 그림 (권숯돌)

아파트단지 안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차에 숙북히 쌓인 눈을 한 웅큼 움켜쥐었다.
물기를 머금어 뽀드득 소리가 났다.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좋았다.
또다시 세상을 떠난 권숯돌 작가가 생각났다.
삶이란 무엇인가?
수북히 쌓인 눈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거다.
눈을 움켜쥐었을 때 상쾌함을 느끼는 거다.
그런 거다.
나와 가깝게 지내던 이가 눈을 움켜쥘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말도 할 수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읽거나 쓸 수도 없는 완전한 무의 세계!
출판사에서 권작가와 함께 작업한 책 표지 디자인을 보내왔다.
8차 수정본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마침 우리집에 놀러온 동네형에게 표지를 보여주니 바로 좋다는 말을 하였다.
고급지단다.
집에 있는 다른 책들과 비교하며 참 잘된 디자인이라고 했다.
동네형이 돌아간 뒤에는 동료작가에게 톡으로 디자인을 보여주니 역시
좋다고 하였다.
마음이 흐뭇해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권작가가 생각났다.
공동 저자로서 표지 디자인을 함께 보았음 좋았을 것을.
다시 한번 그 이의 부재가 느껴졌다.
권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울어본 적이 없다.
눈물이 안나왔다.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 무덤덤하다.
어쩌면 슬프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슬픈 상황이니 슬퍼야한다는 생각을 강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거다.
동료로서 함께 보냈던 날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못생겨서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는 내 말에 권작가는 못생기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비록 잘생겼다는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주고받았던 그런 말들이 생각난다.
떠나간 사람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생각이 많이
나지만 한달이 가고 두 달이 가면 잊혀질 거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주고받은 말들을 떠올리거나 함께 작업한 책을 보며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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