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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권샘

권숯돌 작가 이야기

by 만선생~ 2024. 2. 19.

 
 
 
이어쓰는 권숯돌 작가 이야기
권숯돌 작가가 일본 유학 시절을 이야기 한 적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렇다.
9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약 2년동안 KBS 방송 작가로 활동하였다.
유학을 결심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도박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나아가 빚을 떠 안겼다.
가정 내 불화는 말할 수 없이 컸다.
처음엔 영어권 나라로 유학을 떠날 생각이었으나
이런 저런 사정이 겹쳐 일본으로 방향을 정했다.
2년 과정인 랭귀지 스쿨을 1년만에 마치고 들어간 곳이 나고야 대학
대학원이었다.
유아심리학과라고 했다.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나고야의 수호신이라 불리며 활동하던 무렵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은 나는 대학사회를 모른다.
그럼에도 권숯돌 작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대학원을 다니는데 학교에서 연구비로 매달 20만엔 정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200만원 정도다.
왠만한 한국 직장인들보다 많은 돈을 학교로부터 받는 것이었다.
공부하면서 저런 돈을 받을 수 있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다.
90년대 내 연소득이 300만원 정도였으니 비교 불가였다.
정말이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그래서인지 생활의 불편함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더하여 동생 학비를 보내 주기도 했단다.
지금은 상상 못할 일이지만 당시는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기 전이어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아는 일본 대학은 도쿄대학교, 교토대학교,
와세다대학교, 게이오대학교와 만화과가 있는 교토 세이카(精華) 대학정도다.
어느 도시에나 대학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고야대학은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나고야대학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여섯명이란
것이다.
교토 대학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명 뿐인 우리나라와 비교 되었다.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국력을 가늠하는 기준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권숯돌 작가는 대학원을 마친뒤 같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그만두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다.
대신 영화 학교에 들어가 영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여기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윤석열 대통령 아버지 윤기중은 일본 문부성 1호 장학생이었다.
일본에서 학비와 체류비를 지원받아 공부를 한다.
일본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일본 중심의 세계관에 빠져든다.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한국 내 친일파들을 길러냈다.
이영훈을 중심으로 한 뉴라이트의 출연은 우연이 아니다.
돈으로 유학생들에게 한국을 경멸하며 일본을 추앙하고 나아가 역사를
왜곡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 역시 자신할 수 없다.
학비와 생활비를 제공받으며 공부를 하게된다면 일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다.
나아가 일본 문화를 더더욱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르짖는 뉴라이트가 될 수도 있다.
설령 뉴라이트가 되지 않더라도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배를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일파란 외피를 두르며 내나라 내 민족을 얕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왜냐면 환경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므로.
그런데 신기하게도 권숯돌 작가는 다르다.
뉴라이트와는 너무나 멀다.
한국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진보적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았다.
주말이면 조선인 학교로 달려가 풍물을 하였고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난징 대학살 현장으로 답사를 떠나기 했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의 진보 정당을 지지했고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의병장 희순"의 스토리를 쓰기도 했다.
나는 그런 권숯돌 작가에게 동료애를 느꼈다.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함께 나아가는 동지라 여겼다.
하지만 신은 권숯돌 작가에게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2024년 초 생을 다하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흩어져 있는 그의 흔적을 하나씩 모으는 것이다.
권숯돌 작가의 삶은 개인의 삶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적 삶을 살았다.
동료 작가로서 미흡하나마 그가 남긴 삶의 궤적을 좀 더 큰 무대로
끌어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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