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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권샘

권숯돌 작가의 책

by 만선생~ 2024. 2. 19.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큰 충격을 받지않았다.
이미 돌아가실 걸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헌데 동료인 권숯돌 작가는 다르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왜이리 황망히 떠나야 하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은 마흔 무렵이다.
이전까지 죽음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생물은 필멸한다.
지구에 생물이 생겨난 이래 이를 비껴나간 존재는 없었다.
죽음 뒤엔 무엇이 있을까?
없었다.
그리하여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생각하면 땅이 꺼지는 기분이 들곤 하였다.
그만큼 소멸은 두려웠고 그와 비례해 삶에 대한 애착도 커져만 갔다.
오십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도 나는 죽음이 두렵다.
할수만 있다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이다.
생전에 아무리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해도 죽어선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세상을 떠난 권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다.
마치 지금이라도 전화가 걸려와 잘 계시냐 물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고 책장엔 다른 책들 사이에 권작가가
남기고 간 책이 보였다.
<<문화 多양성을 배당해드립니다>>란 책이었다.
권기현 서은경 작가와 함께 중앙대학교 다문화콘텐츠연구소란
곳에서 의뢰를 받아 그린 만화였다.
분량은 33쪽.
나와 공동 작업한 <<의병장 희순>>을 써서 스토리 작가로 데뷔를 하였으나
글 그림을 함께한 만화는 처음이었다.
아마도 권작가의 삶에서 스토리 작가 뿐 아니라 만화를 그린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으리라.
전직 방송 작가로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었을 뿐이다.
취미로 그림을 그려왔지만 만화 원고를 그린다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나는 원고 의뢰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걱정을 하였다.
해낼 수 있을까?
이같은 나의 마음은 노파심 즉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권작가는 보란 듯 원고를 완성하였고 마침내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물론 첫 만화 원고라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내겐 발전 가능성이 더 커보였다.
무엇보다 기성의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주류 만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또 기성 작가의 그림을 한 번도
베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색깔을 지녔던 것이다.
익히 보아온 현란한 그림보다 형식미는 좀 떨어져도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그림이 독자의 눈길을 더 끌지 않던가!
그런 점에서 권숯돌 작가의 황망한 죽음은 한국 만화사의
손실이기도 하다.
아니 일본 만화사의 손실일 수도 있다.
일본에 거주중인 권작가는 가족을 소재로 한 한페이지 짜리 만화를
몇 편 그린 적 있다.
펜도 입히지 않은 스케치 수준이지만 일단 완성만 하면 일본 만화
잡지에 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가 많지 않으니 잡지사로도 부담이 없다.
어느 잡지사든 끼워넣기 식의 만화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몇 페이지씩 연재를 1년 2년 연재를 하면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올 수 있다는 말을 여러번 하였다.
<<마루코짱>>처럼 국민 만화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그러고보니 <<마루코짱>> 작가도 이른 나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상에 긍정적 에너지를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이 황망히 갈 때마다
안타까움은 커진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그 곳!
죽은 이는 살아있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권작가를 서서히 잊어갈 것이다.
다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권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그리고 공동 저자인 나라도 그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또 누가
할까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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