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좌 艮座

간좌 艮座

할아버지 산소에 상석을 세운다하여 없는 살림에 30만원을 내었다.

상석값만 100만원이고 이런저런 비용을 모두 합해 250만원이 들었다 한다.

아버지 자식들과 작은 아버지 자식들이 나누어 돈을 내었다.

상석을 세우는 날 묘소에 가봐야 하나 일때문에 가보질 못했다.

대신 작은형이 보내온 사진을 보았다.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올려놓는 상석(床石).

상석 앞면엔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이 써있고 옆면엔 아버지를 비롯한

자녀들과 배우자 이름이 쓰여 있다.

열다섯살 세상을 떠난 고모 이름도 있다.

學生 羅州 鄭公 光述 配 蔚山 金氏 賢淑 之墓 艮座

학생 나주 정공 광술 배 울산 김씨 현숙 지묘 간좌

나는 오른 쪽 끝에 艮座간좌라는 작은 글씨가 낯설었다.

배우자의 왼쪽을 뜻하는 부좌(祔左)는 많이 봤어도 간좌는 처음이었다.

큰형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으니 바로 답을 하였다.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간방(艮方)인 동북쪽을 등진 방향이나 자리.'라고.

그러면서 패철에 간자가 써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패철을 찾았으나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없는데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21세기를 사는 내 생활은 전통과 많이 단절돼 있다.

역사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해선 알아도 전통생활에

대해선 모른다.

일 년에 몇 번씩 지내는 제사만 유일하게 몸으로 체화돼 있다.

사람이 죽은 뒤 치르는 장례와 장묘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제법 전통을 중요시하는 나조차 이럴진대 세대를 건너 뛰면 어떨까?

소수의 몇몇 연구자를 통해 계승될 것 같다.

아니 그조차도 생활과 접점이 없으니 완전 사라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