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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 그리고 현호색

by 만선생~ 2024. 4. 20.

 

 

 
 
 
해마다 이맘 때면 꼭 보아야할 것이 현호색이다.
내내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자니 조바심이 났다.
현호색을 못보고 봄이 지나가면 어쩔까 하는.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양주 불곡산 백화암으로 향했다.
절 입구 약수터에 푸른빛이 도는 현호색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운게 아니다.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적거리다 때를 놓쳐 현호색을 못보고
지나가가버리면 얼마나 아쉬울 것인가!
약수터서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다.
문득 불곡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그래 내친김에 한번 가보자.
예정에 없던 산행.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진달래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머지않아 꽃이 다 질 것을
알기에 더 그랬다.
정상으로 가는 산능선엔 몇개의 고구려 보루가 있다.
쌓아올린 돌들과 원형의 홈들이 이를 증거한다.
홈에 나무를 끼워 초소를 세우고 목책을 설치한다.
동력이라곤 오로지 손 하나 뿐이었던 시대.
이 단단한 바위를 뚫기 위해 정을 얼마나 내려쳤을까?
고구려 병사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과 거친 손마디가 떠올랐다.
1600년이란 시간을 뛰어 넘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고구려 보루.
고구려 보루를 지나 십여분 걸으면 바로 정상이다.
해발 470m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득하다.
멋모르고 올랐다 고생을 엄청했던 임꺽정봉이 아득하고 수락,사패,도봉,
북한산이 아득하다.
내려오는 길에 이태동안 연락을 안했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방과후 수업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코로나로 수업이 다 없어졌단다.
작년엔 다양성 만화도 2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영업사원을 뽑는 것도 아닌데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요구하는 만화영상진흥원 측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였다.
나 역시 충분히 공감했다.
왜 본질에서 벗어난 걸로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
결과도 늦게 늦게 알려줘 희망고문으로 사람 진을 다 빼게 하고.
서류는 또 어떤가?
말하면 입이 아프니 여기서 멈춰야겠다.
각설하고 그럼 어떻게 살았냐 물었더니 소상공인 지원금 300만원을 비롯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으며 버틸 수 있었단다.
그리고 곧 방과후 수업이 재개된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2017년 아주 짧은 영어로 미국 백인여자와 사랑에 빠져 미국
텍사스에 다녀온 이야기를 다시 하였다.
못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환타지도 이런 환타지가 없다.
후배의 도전정신이 놀랍다.
비록 안좋게 헤어졌지만 인생에 남을 멋진 로맨스다.
나는 모든 걸 만화로 연결시키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후배에게 니 얘길 만화로 그려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니 얘길 다양성 만화로 신청해보라고 했다.
후배의 입에선 다양성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부터 나왔다.
그리고 자기도 만화로 그려볼까 생각했지만
발표할 공간이 없단다.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창작을 해오던 후배였다.
하지만 세상은 후배의 작품을 외면했고 깊은 수렁에 빠졌다.
천만다행으로 방과후 수업이 있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작품에 대한 투지는 사라져 버렸다.
설사가상 다양성에 떨어진 뒤론 자신감을 잃었다.
다시 기운을 차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투지를 불살랐음 좋을 텐데...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렌트카로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 후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10년 연하의 백인 여자를 만나러 가는..
 
 
202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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