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도 세상을 떠나고 출판사도 문을 닫고...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서점에서도 유통이 안되는 책.
할수 없이 온라인 중고서점에 들어가봤는데 다행히 있었다.
배송비 포함 28,500원으로 딱히 웃돈을 얹어 파는 것 같지도 않다.
한국 만화사 최고의 그림쟁이.
어느 순간 테크노라이트를 뛰어넘어 의식있는 작가로 거듭났다.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부자의 그림일기" 만화란 한낱 심심풀이로
넘겨보는 것이 대중의 인식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만화의
예술성이 입증되었다.
작가는 오리지널 스토리 외에도 한국 단편 소설을 만화화 하였다.
익히 알고 있는 소설도 있지만 태반은
금지돼있던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쓴 약을 먹게 하기 위해 겉에 설탕을 입히는
것이 이른바 당의정이다.
사람들은 글씨가 빼곡한 문학 작품이나 사상서를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만화로 읽는 '서울대 선정 세계 문학 100선'
같은 작품들이다.
만화의 높은 흡입력을 이용해 문학작품이나 사상서를 읽게 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만화가 당의정이다.
솔직히 이런 작품들은 원작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수박 겉핧기식으로 대충 내용만 파악할 뿐이었다.
만화가로서 자괴감이 든다.
이 것이 정녕 만화의 역할인가?
만화는 소설과 다른 만화만의 고유한 특질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만화화 하는 것이 마땅잖았다.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도 오리지널 만화 스토리들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그려진 만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아 널리 읽힌
예는 많지 않다.
나 역시 만화를 위해 쓰여진 오리지널 스토리들에 가치를 두었다.
몇몇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화화 하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모두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못날지라도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 것이 아니라면 만화를 위해 만들어진 오리지널 스토리여야 했다.
그런데 예외는 있었다.
오세영 선생이 그린 단편 소설들은 당의정이 아니었다.
원작을 훨씬 뛰어넘었다.
일 례로 이태준의 단편소설 '복덕방'을 읽었을 때 심심하단 생각을 했다.
닝닝하다는 말이 맞다.
그런데 오세영 선생의 만화는 달랐다.
소설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만화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대단한 성과다.
작품 해석 능력이 뛰어난데다 그 표현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그림 실력이다.
한국 만화사에 이 정도 예술성을 획득한 작품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만약 만화가 오세영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서점서 "부자의
그림일기"를 쳐보라.
주문 다음날 책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경지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손에 탄생할 한국 만화사 아니 세계 만화사에 빛나는 작품을
우리는 볼 수가 없다.
202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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