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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만화

오세영 <<토지>>

by 만선생~ 2024. 7. 29.
 
 
애써 외면해왔던 만화 "토지"를 4권까지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읽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없다.
소설 토지를 만화로 각색해 그린 오세영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력자다.
데셍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이가 없다.
세계 최고라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연출력도 빼어나다.
선생이 그린 단편소설들은 이같은 장점이 아주 잘 살아나 있다.
헌데 만화 토지는 오세영 선생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나로서도 읽기가 힘들었다.
읽다가 자세가 비틀리면서 어느새 잠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이같은 일이 몇번이나 반복하고서 겨우 4권까지 읽은 것이다.
5권 6권 7권...
쉽게 읽어 내려갈 것 같지 않다.
나는 애초 오세영 선생이 토지를 안그렸음 좋았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모자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길 바랬다.
그리고 "부자의 그림일기"라는 단편집을 통해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단편 고흐 이야기는 정말 좋았다.
욕심 안부리고 그 정도 작업을 계속 해왔더라면
건강도 잃지않고 작가로서 명성도 더 올라갔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소설과 만화는 장르가 전혀 다르다.
만화 한쪽과 소설 한쪽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의 양이 다르다.
소설 한 쪽을 만화로 소화하기 위해선 몇 쪽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선 소설 문장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양 펼침면으로 몇날 며칠을 그려야 한다.
그런데 토지는 무려 20권이다.
이 내용을 그런대로 표현하려면 80권 정도가 필요하다.
오세영 선생같은 스타일로는 평생을 그려도 못그릴 분량이다.
그 걸 스무권 안에 담아내겠다니 내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밖에 없다.
다이제스트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에선 한 인물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를 못한다.
인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이야기는 계속 흘러가고.
아낙들이 하도 많이 등장하여 나는 누가 누군지 알기가 힘들었다.
나누고 있는 대화가 너무도 길다.
소설 문장만 읽으면 쏙 들어올 내용인데 그림보랴 대화를 읽으랴 참으로 피곤하다.
이렇한 이유 때문에 나는 한 말풍선 안에 대사를 길게
쓰지 않는다.
그림에서도 약점을 많이 드러냈다.
칼라시대에 발맞추느라 그랬겠지만 칼라가 피로를 가중시켰다.
그리고 튀는 색은 왜그리 많은지 색에 시선이 가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거기가 종이까지 반짝이는 라미네이팅이다.
발색은 좋은데 눈이 피로한 게 바로 이 종이다.
색을 더 죽이거나 아니면 흑백으로 했음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독자도 편하고 작가도 편한.
최고의 그림 실력을 지녔지만 그리기가 만만잖았을 것같다.
아니 노동 강도가 엄청나다.
거기다 등장인물이 너무나 많다.
이들을 다 변별력 있게 그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세계 만화사의 한 획을 그은 고츠레 오오카미란 일본 만화가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준 작품이다.
이를 그린 고지마 고세키의 그림은 경지에 올라섰지만
쓸 수 있는 캐릭터가 그리 많지 않다.
몇명을 빼곤 다 비슷비슷하다.
그가 만약 토지를 그렸다면 독자는 인물을 구분하지 못해 곧 책장을 덮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츠레오오카미가 성공한 건 이야기가
에피소드 증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에피소드에 나왔던 인물이 또 나와도 독자는 극에 몰입한다.
말하자면 캐릭터 돌려막기다.
그에반해 만화 토지에선 돌려막기가 불가능하다.
모두 변별력 있게 다 그려야한다.
토지 캐릭터들을 보며 변별력 있게 그리려 얼마나 노력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난 헷갈렸다.
애가 누구지 하며 책장을 거꾸로 넘기며 확인해야했다.
그만큼 지난한 작업이었다.
오세영 선생이 세상을 뜬지 8년.
리뷰를 남겨도 리액션이 없다.
너무나 좋아한 작가였기 때문에 그림도 닮지 않을까
걱정되어 선생의 책을 보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누군가 내 만화를 보고 오세영 선생 그림과 닮았다는 애길 할 거 같아서다.
그래서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동료작가들에게 내 그림과 오세영 선생의 그림이
닮지 않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전혀'였다.
휴...
그리고 이후 어느 누구도 내 그림을 보며 오세영 선생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지만.
어쨌든 이제 오세영 선생의 작품을 마음놓고 본다.
곧 5,6,7권을 주문해야겠다.

2023.7.29 

* 포스트 잇은 모르는 낱말이 나왔을 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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