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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에어컨 실외기

by 만선생~ 2024. 7. 23.
귀가 어두워 말을 똑바로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있다.
10년전 쯤 작업실을 함께 쓰던 후배가 시래기 시래기 하는 것이었다.
시래기는 배추잎을 말린 것으로 난 시래기국을 참 좋아하였다.
얼큰한 된장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문맥상 시래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뭣해 모르는 척 넘어갔다.
나중 알고보니 에어컨 실외기였다.
나는 그 때까지 에어컨을 설치한 적이 없어 실외기란 말을 몰랐다.
더운 열기를 내뿜는 기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지구 환경을 위해 에어컨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곤했다.
헌데 그 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도시는 열섬효과로 더 뜨꺼워졌다.
지구인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지구를 위해 전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다들 내 마음 같지가 않다.누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여름을 여름같지
않게 보내고 누구는 실외기에서 내 뿜는 열기를 그대로
견디고.
불평등도 이런 불평등이 없었다.
나도 살아야했다.
더구나 손님이라도 오면 민망하다.
손님을 이렇게 덥게 하다니.
그래서 과감히 에어컨을 설치했다.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는데 일조를 하는가 싶어 죄책감이 들긴했지만
나혼자 덥게 지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에어컨을 트니 세상없이 시원했다.
선풍기에 댈게 아니었다.
특히 습한날 에어컨을 틀면 눅눅하지 않아 좋다.
옷도 이불도 뽀송뽀송하다.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
인간은 불편한 것엔 쉽게 적응이 안되지만 편안함에는
적응 속도가 엄청 빠르다.
이젠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튼다.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다는 죄책감도 줄었다.
그러다 화분에 물주러 베란다에 나가면 실외기에서
나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이렇게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구나 싶다.
밖에 나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면 실외기가 설치돼있지
않은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엔 인간이 발명하지 않았음 좋았을 물건들이 많다.
첫번 째는 핵이고 두번째는 플라스틱 세번째는 에어컨이다.
인류가 에어컨만 사용하지 않았어도 지구의 온도가
이렇게 올라갔을 것 같진 않다
시래기로 잘못알아 들었던 실외기를 볼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지구인 모두가 동시에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그 행렬에
동참하겠다.
 
202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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