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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외손봉사 外孫奉祀

by 만선생~ 2023. 11. 11.
외손봉사 外孫奉祀
외삼촌이 십대 나이로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뒤 딸들만 남았다.
외할아버지가 마흔 둘에 세상을 떠나자 집안은 더 쓸쓸했다.
출가외인.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시집간 딸들은 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문중에서 설과 추석에 차례상을 올릴 뿐이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친가인 할머니 제사는 빠지지 않고 지냈지만 외가 쪽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
솔직히 삼십대 중반까지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존재 자체를 몰랐다.
어머니에게도 분명 어머니 아버지가 있었을텐데
말을 하지 않으니 알턱이 없었다.
그러다 삼십대 후반 "정가네소사"를 그리며 내게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어머니로부터 외가쪽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친밀도도 깊어졌다.
그리하여 "정가네소사"는 삼대에 걸친 집안 이야기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는
거의 없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친가 쪽은 아버지 이야기 말고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아버지 산소는 김제 황산에 있고 외가쪽 산소는 김제 황산면 농원에 있다.
장손인 큰형은 아버지 산소를 자주 찾는데 비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는 거의 찾지 않는다.
부계 혈통을 중요시 한 탓이다.
할아버지 산소가 김제에 있었으면 빠지지 않고 찾았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김제 동학농민운동기념회에서 주최하는 원평 취회에 참여한 뒤 김제 황산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과일은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오징어포와 조청 그리고 술을 올렸다.
이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역시 같은 음식을 올렸다.
유물론자로서 죽은 뒤엔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로적으로 무덤을 찾는 것과 찾지 않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죽은 이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게 아니다.
그나마 후손들이 무덤을 찾아줘야 외로움이 덜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손들이 찾아줬을 때 주위 혼령들에게도 면이 서는 것이다.
위로를 받는다.
외손봉사는 외가 쪽에서 재산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한다.
외가에 대한 정이 아무리 깊어도 물적 토대가 없으면 봉사를 하기 힘들다.
나 역시 사는게 힘드니 외손봉사는 생각하기 힘들다.
다만 김제에 왔을 때 아버지 산소를 돌아보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에도
와보는 것이다.
유전자를 물려준 이들에 대한 성의라면 성의다.
큰형에게 외할머니 산소를 찍어 보내주니 외할머니 산소 앞의 안산이
황산인데 일자문성一字文星으로 모양이 아주 좋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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