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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석정 이정직

by 만선생~ 2023. 11. 9.

석정 이정직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가까이 헌책방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읽고싶은 책들이 많아 여러권 샀다.
들고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그런데 또 한권의 책이 눈에 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발간한 석정 이정직이다.
석정 이정직은 전북 김제 사람으로 우리나라 마지막 실학자다.
학문과 예술세계가 깊어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김제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오가며 이정직 생가를 세차례 방문하고 후손을 두 번 만났다.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석정의 가장 어린 제자는 최승현이란 분이다.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최영의(최배달)의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와도 인연이 있어 무면허 의사였던 아버지는 최면장(최승현) 댁으로 가 링겔주사를
놓곤했다.
집안 머슴과 결혼한 최면장 따님은 우리집 너머에 사셨는데 지금도 어렴풋하게 기억이난다.

책자엔 최면장이 열일곱에 썼다는 스승 이정직에 대한 글이 남아있다.
한말 구례사는 매천 황현이 강화도에 살던 이건창의 부음을 접하고 강화도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황현은 김제 석정 집에 며칠을 머문다.
석정은 황현이 떠나가는 길에 제자인 송기면에게 배웅을 하도록했다.
이때 송기면은 열일곱살인 최승현을 데리고 간다.
배웅길에 송기면은 황현에게 스승인 석정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
황현은 석정을 일컬어 이삼백년만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사람인데 이런 시골에서 썩고 있는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 대화를 최승현이 스승이 돌아가신 뒤 적은 글이 지금까지 전해져 책자에 실렸다.
순 한문은 아니고 조사만 우리말이다.

90세까지 산 최승현은 자녀들이 모두 잘됐다.
조선일보 기자로 대학총장으로 또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로 이름을 떨쳤다.
다만 우리 아버지와 친했던 최영범씨만이 평범한 농부로 살다갔다.
최면장은 키가 컸는데 아들들도 골격이 굵었다.
최영의 씨의 형인 최영범씨는 골격이 굵고 키도 더 컸다.
생활이 어렵자 최영의씨가 형을 위해 논 몇마지기를 사주었다고 한다.
석정의 제자인 송기면 자제들도 모두 잘돼 아들 송성용은 서예가로 이름을 크게 날리고
손자들은 대학교수와 전북도지사가 되었다.
페친인 **송님은 송기면의 증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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