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문화를 보고싶으면 일본을
송나라 문화를 보고 싶으면 베트남을
명나라 문화를 보고 싶으면 조선을 보라. 란 말이
있다고 두선생의 역사공장이란 유튜버가 알려준다.
일본 교토는 당나라 수도 장안을 본떠 만든 도시다.
교토는 세 번 다녀왔는데 니조, 하치조란 지명에서
보이듯 구획도시란 걸 알 수 있다.
지형이 평탄해 구획이 가능하다.
자전거 타기에 좋다.
그에 반해 한양은 산중 도시라 구획이 불가능하다.
자전거를 타기 좋지 않다.
한강을 나가야 비로소 폐달을 마음껏 밟을 수 있다.
모르긴 해도 교토의 옛 건축물들은 당나라 시대
건축물을 많이 본뜬 것 같다.
베트남은 패키지 여행으로 한 번 돌아본 게 전부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몇 개의 옛 건물을 봤지만 송나라 시대 영향인지는 알 수가 없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다.
화약 나침반 등이 발명된 시기가 바로 송나라다.
농업생산력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상업이 발전하였다.
송휘종 시대 장택단 그린 청명상하도엔 약국만 무려 네 개다.
산업 혁명 목전에까지 이르렀던 나라 송.
당시 세계 GDP의 30% 정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주변국인 베트남이 이런 송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은 명나라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덕분에 명나라 우산 아래에서 오랫동안 평화를 구가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이 참전을 한 뒤엔
명나라에 대한 사대가 더욱 깊어졌다.
대세는 이미 청나라로 기울었건만 의리를 앞세운
사대부들은 명나라 바지가랑이만 물고 늘어졌다.
그 결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 들였고
국왕 인조는 청태조 홍타이시 앞에서 구고삼배의 예를 치르게 된다.
개국 이래 가장 치욕스런 순간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선비들은 망한 명나라를 잊지 못했다.
공식 문서엔 청나라 연호를 썼지만 민간에선 명나라 황제의 연호를 계속 썼다.
숭정 기원후 106년. 이런 식이다.
정신승리도 대단해 세상의 도가 조선에 있다며 소중화를 자처했다.
조선 전기엔 필요에 따라 사대를 하는 관계에 그쳤는데
사대 관계가 오래되다보니 자신을 마치 명나라 사람인 양 여기게 되었다.
이런 내면화는 일제 식민통치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해방이 된지 70년이 지났건만 일제의 신민을 자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국력이 강해져 이제 더이상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데 계속 머리를 조아린다.
아니 있던 것마처 다 내주고 있다.
윤석열을 비롯한 뉴라이트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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