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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만화

곽원일 <<코끼리산 아이들>> 리뷰

by 만선생~ 2024. 10. 6.

 

그녀가 쉬는 날엔 함께 의정부 천보산을 오른 뒤 계곡에서 놀곤했다.
누구도 봐주지 않는 작은 계곡이지만 물이 있어 참 좋았다.
그녀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물 속에 두 손을 넣은 뒤 물고기를 잡곤 했다.
오므린 손 위로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은 신기하기 이를데 없었다.
물론 물고기는 잡는 즉시 놔주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1년 쯤 지나 천보산 계곡을 갔더니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계곡을 파헤친 뒤 돌로 제방을 쌓아두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공사인지 알 수 없었다.
물난리를 걱정할 곳도 아닌데다 바닥까지 시멘트로 바르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물고기가 살아갈 환경이 전혀 못되었다.

우리나라엔 자연을 볼모로 배를 불리는 자들이 있다.
바로 토건 마피아다.
이들은 말도 되지않는 논리를 내세워 산과 강을 파헤친다.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엔 굴착기와 포클레인이 땅을 헤집고 있다.
그 파헤친 흙을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실어 나른다.
수십 수백대에 이르는 레미콘은 엄청난 양의 시멘트를 파헤친 산과 강에 퍼붓는다.
조용한 산사엔 오솔길 대신 포장도로가 나 자동차들이 질주하기에 이른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온전하지 않다.
그 저변엔 정치, 관료, 토건으로 이어지는 카르텔이 있다.
이들 카르텔을 깨뜨리지 않는 한 정치적 민주화도 경제적 민주화도 요원하다.
자연을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태 자연 국가는 한 낱 구호로만 남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곽원일 만화 <<코끼리산 아이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만화임과 동시에
토건 마피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정확히 분리되지 않는다.
공동체와 자기 자신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한다.
저들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지만 깊이 들어가면 말못할 사정이 있다.

그렇다.
작가는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복잡 다단함을 칸과 칸
사이에 아주 잘 배치하며 녹여내고 있다.
독자의 시선이 단 2~3초 머물 장면 하나를 위해 몇날 며칠 밤을 지새워 그렸다.
이런 수고함으로 인해 작품은 더욱 빛난다.
우리가 지켜할 코리리산이 작품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 도처에 있음을 작가는

힘주어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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