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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타는 날 "너희 엄마 계타는 날이냐?"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은 반친구에게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다.계타는 날은 기쁘다.오랫동안 부었던 돈을 타니 안 좋을 수가 없다.가전제품도 사고 자녀들 등록금도 내고 전세 자금도 마련하고.계타는 날은 삶의 도약을 이루는 날이다.위기에 빠져 있었다면 계를 타며 위기에서 빠져 나오기도 한다.지금은 계가 사라진 듯 하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너도나도 계를 맺었다.계를 맺어 자신의 삶을 보호했다.말하자면 사회 안전망이었다.국가가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니 개인들끼리 힘을 모아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조선은 계의 나라였다.위로는 양반들부터 아래로는 종들까지 계를 맺었다.종들이 양반을 죽이자는 살주계와 검계도 있었다.신분제사회의 맨 밑바닥에 있는 종들도 죽음이 슬프기는 마찬가지다.계원의 아.. 2024. 11. 30.
용두동 골목길에서 본 한옥 어제 용두동 골목길에서 본 한옥.1980년 초 용두동에 사는 작은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이런 기와집이었다.작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이 살던 집.우리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올라와 세들어 살았다.작은 할아버지는 빡빡머리에 한복을 입으셨다.댓님을 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어른 앞에선 무릎을 꿇고 있어야하는 줄 알고무릎을 꿇었더니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가 힘들었다.반면 육촌 동생들은 편안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었다.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고 했다.사는게 넉넉치 않으니 우리를 살갑게 대하진 않았다.그래서 명절날이 아니면 가지를 않았다.그래도 한옥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 생각한다.한국인으로 살면서 한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불행이 아닐까 싶다.작은 할아버지가 살.. 2024. 11. 30.
제기역 미도파 백화점 앞길 어제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제기역 앞길을 걸었다.그 유명한 약령시장 앞이다.어린시절 제기동에 살았건만 방향이 헷갈려 장사하는 분에게 물었다."제기역이 이쪽 맞나요?""네"거리는 경천동지할만큼 달라져 있었다.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꿈에도 몰랐다.어릴 때 제기역에서 미도파 백화점에 이르는 길은 한산했다.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약령시장과 경동시장의 외곽이었다.미도파 백화점도 수지가 맞지 않아 문을 닫았다.그런데 이게 왠일인가?가게는 제기역 안까지 이어져 있었고 역사엔 사람이 많았다.예전과 비할바 아니었다.과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1980년 우리집은 제기동 골목길 단칸방에 한달을 살고 가까운 산동네로 이사를 갔다.친구집에 놀러가려 몇개월만에 그 골목기로 와보니 한산하던 골목길은 시장이돼있.. 2024. 11. 30.
서른 즈음에 나는 음치다.학교 음악시간에 실기시험을 보면 기본점수밖에 받질 못했다.노래를 못부르니 사람들 앞에 나가 노래 부르는 걸 꺼린다.노래방 가자는 사람들이 싫다.노래방에 가선 억지로 몇곡 부를 뿐 주로 듣기만 한다.2005년이었나?동료작가들과 용인 남사에 살고계신 오세영 선생댁을 찾았다.마침 출판사 사람이 와있어 분위기가 왁자해졌다.밖에 나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니 모두들 마음이 들떴는지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노래방을 가게 되었다.순번이 돌고 선곡한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불렀다.썩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제목에 꽂혀 선곡 했더랬다.자꾸만 멀어져간다~사랑인 줄 알았는데~노래가 끝나자 오세영 선생님은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야 너... 왜 나를 울리고 그래~~~"나의 노래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니 믿기.. 2024. 11. 30.
박정희 주의자 옛날 오세영 선생님이 만화 토지를 그리고 계실 때 작업실에 놀러갔더니낯선 사람 하나가 와 있었다.배경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었다.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 열렬한 박정희 추종자였다.적어도 내가 아는 만화계 사람 중에는 박정희를 추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경제개발을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펴는 그 사람을 보며절망감이 엄습했다.젊은 사람이 왜 이러는 거야?기성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란 걸 모르나?독재자가 심어놓은 논리에 세뇌당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그를 설득할 자신도없거니와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싫어 이내 입을 닫고 말았다.그런데 웃긴 건 이 사람이 오세영 선생의 작품을 단 한편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오세영 선생의 작품이란 작품은 모두 다 알고 있는 나로선 왜 이사람이 .. 2024. 11. 30.
"백정 동록개" 스토리 작업 중. "백정 동록개" 스토리 작업 중.한 치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치듯 막막하다.길이 어디 있는 줄을 모른다.그저 조금씩 발디디며 한걸음씩 나갈 뿐이다.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아니라 쓰면서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물건이 될 거란 확신은 없다.물건이 안된다해도 어쩔 수 없다.되든 안되든 만들어 갈 뿐이다.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금구 대접주 김덕명에게 자신이 살던 집을 바쳤다는 이.문헌 자료는 상량문이 유일하다.그마저도 없었으면 실재했던 인물이었는지조차 의심이 들 것 같다.이전 포스팅 댓글에 페친 중 한 분이 이제 스토리도 직접 쓰냐고 물으셨다."의병장 희순"과 "1592 진주성" 이 스토리 작가와 협업을 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그런데 나는 내가 줄곧 스토리를 써왔다.두 .. 2024. 11. 25.
내 사진이 들어간 머그컵 나의 한 열혈 독자께서 선물을 주셨다.내 사진을 새긴 머그컵이다.함께 찍은 사진 중 하나를 골라 컵에 새긴 것이다.얼마를 줬냐고 물으니 답을 안한다.기왕 컵에 새기는 거 젊었을 때 사진을 쓰면 좋으련만툭피면 데구르르 굴러갈 것 같은 사진을 써서 유감이다. 2024. 11. 25.
무진기행 작업하기 싫어 소설 한편 봤다.김승옥이 1964년 발표한 '무진기행'이다.소설이 하도 유명해 무슨 대단한 스토리가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가 잠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하룻밤보낸단 이야기다.여행을 아무리 다녀도 낯선 여자와 말한번 섞어보지못한 나로선 부럽기 짝이없는 설정이다.시대가 시대이니만치 현재로선 납득하기 힘든대목들이 눈에 띈다.여자를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그려놓은 것이 그렇다.요새 이런 소설을 발표 했다간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여성독자는 물론 남성독자들에게까지질타를 받을테다.내용은 다소 뻔한데 당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어좋았다.사라진지 오래인 사범대학 이야기도 나오고.특히 안개에 대한 묘사가 인상깊다.아래 베껴 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일독할 가.. 2024. 11. 25.
선배 나보다 여섯살 많은 선배는 자신의 처지를 자주 비관했다.그러면서 하루는 자기집에 세들어 살던 집 딸이 tv에 나와 인터뷰하는 걸 봤다고 했다.세들어 살던 집 여자아이는 이름만 대도 알만한 영화사 대표였다.그녀가 만든 영화들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고 그녀는 일약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명사가 되었다.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던 사람이 어느날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어쩌면 선배는 그녀에게 이성으로 좋아했었는지도 모른다.암튼 나보다 여섯살 많은 선배는 그녀와 자기사이의 엄청난간극을 이야기 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함은 물론 나의 처지가얼마나 형편없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지금은 연락이 끊긴 선배...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까?똑같은 처지에 있더라도 어떤 사람과 있으면 에너지.. 2024.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