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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트로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트로트와 뽕작을 좋아한다.황성옛터를 들으며 처연한 심사에 빠져들고 장윤정의 어머나를들으며 어깨를 들썩인다.나는 오늘도 배호 나훈아 남진 심수봉 최진희 송대관 태진아가 부르는노래에 울고 웃는다.서주경 같은 간드러진 창법의 노래를 들으면 연애를 하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10여년 전 공동작업실을 쓸 때다.하루는 귀가 심심하여 트로트를 한 번 틀었더니룸메이트인 후배가 괴성을 질렀다. "형~ 트로트는... 제발..." 이후 후배는 나를 문화적으로 후진 사람 취급을 했다.만약 내가 비틀즈나 롤링스톤스 셀린디옹의 노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김광석이나 정태춘 이문세 신효범 등등의 노래를들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다.물론 나도 이들의 노래를 좋아하.. 2024. 1. 17.
도봉산 이희재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찾은 아카데미 하우스.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길게 드리운 저 산그림자를 보노라면 가슴이 뛴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처음 올랐던 산! 이후 몇 번을 더 올랐는지는 세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멀리 바라만 봐도 좋고 오르면 더 좋은 저 산의 이름은 도봉이다. 2024. 1. 16.
동인천 홍예문 동인천에서 우연잖게 보게된 홍예문.개항기인 1908년 일본인들이 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고용하여 뚫었다고 한다.일제 강점기 뚫었던 여느 터널과 달리 1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적지않은 차량과 사람이 오간다.홍예문 주위론 높다랗게 쌓은 옹벽과 오래된 집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흔치않은 풍경 때문인지 이 곳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찎기도 한단다.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이스탄불에서 보았던 수도교가 생각났다.동로마제국 때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웠던 수도교.수도교 교각 또한 이런 아치형이었다.우리나라에선 그 모습이 마치 무지개와 같다고 해서 '홍예'라 부른다.함께 이 곳을 찾았던 김경호 작가가 내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2024. 1. 16.
김제 부용 백구금융조합 살고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에가보싶은 열망은 나뿐 아니었나보다.와룡역 앞 하랭이에 살던 아이들도 그랬다.누가 제안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용에 가보기로 했다.간이역인 와룡역에서 익산쪽으로 한정거장 떨어진 간이역이 부용역이다.와룡을 떠나기전 아이들은 겁을 단단히 먹었다.부용 아이들의 텃세가 장난 아닐거란 것이다. 나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부용으로 가는 철길을 걷는 내내 부용 아이들에게 얻어맞는 상상을 했다.길을 떠난지 한시간 쯤 지났나보다.부용역에 도착했지만 부용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이따금 보이는 어른들은 무심히 지나갈 뿐이었다.우릴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부용은 와룡과는 확실히 달랐다.좋은집들이 많았다.담장높은 저 집안에 들어가 살아보고 싶었다.우리들은 먹을 .. 2024. 1. 16.
영화 <<천년학>> 세트장 (장흥) "천년학"은 "서편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둘 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 전작인 "서편제"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관객을 동원했다.나는 이들 작품을 모두 재밌게 보았다.알고보니 둘 다 이청준 소설 작품을 영화화 한 것이었다.지난 주 이희재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권숯돌 작가의 안내로 장흥에 있는 이청준생가에 다녀왔었다.세 분 다 이청준 소설의 팬이란 것에 놀랐다.이청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그에 반해 난 영화로 만들어진 "서편제"와 "천년학" 그리고 "밀양"을 본 것이 전부였다.1차 저작이 아닌 2차 저작물로만 작품을 접한 것이었다.권숯돌 작가에게 어떻게 이청준 소설을 읽게 되었냐고 물었다.답하기를 지역에서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레 찾아 읽게되었다고 했다.이청준 생가와.. 2024. 1. 16.
순천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1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1순천 시립박물관인 뿌리깊은나무에 다녀왔다.몇년 전 낙안읍성에 갔다가 뿌리깊은나무를발견하고 관람하려했으나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하여 헛되이 돌아서야 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관람을 하였다.뿌리깊은나무에 전시된 유물은 모두 고 한창기 선생이 기증한 것들이다.한창기 선생은 잡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으로 평생에 걸쳐 골동품을 수집하였다.그 수도 수지만 가치 또한 이를데 없이 큰 것들이었다중고등학교 시절 헌책방에 가면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물이 있었다.하지만 직접 구입해 읽은적은 없다.한창기란 분을 알게 된 것은 십년 전 쯤 페친이신 정재홍 선생을 통해서다.선생을 통해 창비에서 나온 한창기 평전을 구해 읽었고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을 가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또 고향에 대한 애정.. 2024. 1. 16.
여권 여권 기간이 만료되어 새로 여권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너무나 맘에 안든다. 정녕 내거 이렇게 못생겼단 말인가? 컨디션이 안좋았던 탓인지 눈동자가 참으로 부자연스럽다. 컨디션 좋을 때 다시 와 찍을까? 머리도 깎고. 10년 동안 외국에 나갈 때마다 가지고 다녀야 할 여권이다. 하지만 사진값이 아까웠다 그간 물가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15000원 정도 하던게 2만2천원이다. 못생긴 얼굴 다시 찍는다고 얼마나 나아질까 싶기도 하여 바로 시청엘 갔다 . 텨권 수수료 5만6천원. 보름 뒤에 오면 여권을 찾을 수 있단다. 여권 신청자가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나라 여권 소지자는 전체 인구의 70%라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여권 소지자는 30%라고 한다. 세계 제 3위의 경제 대국 일본.. 2024. 1. 14.
갯마을 오영수 단편소설 갯마을. 갯뻘하면 당연 서해와 남해를 떠올리지만 갯마을의 무대는 동해다. 발목깊이 빠져드는 서해와 달리 동해의 뻘은 깊지않은가보다. 그 것도 모래로 된 뻘이라 씻는게 그리 힘들 것 같지는 않다. 동해에 뻘이 어딨냐고? 나도 못봤다. 하지만 소설이 씌여지던 50년대 초엔 뻘이 있었든듯 싶다. 그렇지 않음 갯마을이란 제목을 달리도 없고. 간척사업과 각종 개발사업으로 동해는 물론 서해와 남해에서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갯뻘. 부연하자면 서해 갯뻘의 나이는 8천년이다. 빙하가 끝나면서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남해보다 서해에 발달해있고 발해만과 가까울수록 뻘이 넓다. 2024. 1. 14.
논산 미내다리 논산 강경 일대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는데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이리 묻는다고 한다."너는 살아서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나의 대답은 이렇다."네."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관촉사 미륵불 외엔 온전한 형태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다리의 기능을 잃어버린 다리앞에서 다리를 보았다 할 수 있나?충청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던 삼남에서 가장 큰다리.조선시대 사람들에겐 크마큰 볼거리였을 것이다.다리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라면 으례 미내다리를 떠올렸으리라.이태전에 본 강진의 병영성 다리도 인상적이었지만 규모에서 미내다리에 미치지못했다.미내다리는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웠다.미내천 위에 떠있는 세개의 무지개.무지개 상단엔 용머리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볼거리를 더한다.하.. 2024.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