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녀온 양주 대모산성에서 궁예의 나라 태봉 유물이 나왔단다.
목간에 쓰여진 글씨 123자.
가장 눈에 띄는 건 정개라는 연호다.
신라, 고려, 조선에선 감히 쓰지 못했던 연호를 태봉국에선 쓰고 있었던 거다.
(고려는 일시적으로 연호를 썼었고 조선은 나라가 기울어가던 대한제국 시절에 겨우 썼다.)
태봉국 시절 중국은 혼란기였다.
강력한 통일왕조가 들어서지 못한채 수많은 나라가 명멸하고 있었다.
때문에 중국 눈치를 보지않고 독자적인 연호를 쓸 수 있었다.
한반도 중부지방에 18년간 존속했던 나라 태봉.
궁예는 왕조를 존속하지 못한 채 왕건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끝나고 말았다.
만약 삼한통일의 위업을 궁예가 달성했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엔 가정이 없지만 궁예의 실기가 못내 아쉽다.
호족들을 다독이며 민심을 얻는데 주력했더라면?
2인자인 왕건을 진작 쳤어야하는데 그를 믿고 의지하다보니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영이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하고 토요토미히데요시가 도쿠가와이에야스에게 무너졌듯이.
그래서 박정희는 2인자를 두지않기 위해 그토록 몸을 사렸나보다.
자신을 왕이라 생각했던 친일 부역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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