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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국내

김제 여행 3 금구 향교 1

by 만선생~ 2024. 3. 25.

 
 
금구 향교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만경현과 금구현은 김제로 강제 편입되었다.
원님이 다스리는 고을에서 일개 면이 된 것이다.
이후 두 고을은 농촌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퇴락의 길을 걷는다.
김제 원평은 본디 금구현이었다.
김제와는 생활권이 완전 다르다.
그 것을 강제로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다.
김제 원평 집강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어 찾은 곳은 금구향교다.
금구관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향교만 남았다.
흉포하기 이를데 없는 일제도 유림의 눈치를 보느라 향교를 없애지 못했다.
그만큼 지방사회에 강력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향교엔 늙은이들만 남아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문화재로서만 남을 판이다.
금구 향교 역시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퇴락해 있었다.
다행히도 어제 석전대제가 치뤄져 행사 마무리를 하느라 문이 열려 있었다.
(평소 향교의 문을 굳게 닫혀 있다.)
향교는 구조가 어느 곳이나 다 비슷 비슷하다.
금구 향교에서도 정문인 만화루를 돌아본 뒤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둘러보았다.
이어 학생들의 기숙공간인 동재와 서재를 돌아보는데 서재에서 문이 열렸다.
노인께서 무슨 일이냐 묻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 중이라 했더니 들어오시란다.
학생들의 기숙 공간이었던 서재에선 두 분 노인이 계셨다.
한 분은 현임 전교라 하고 한 분은 전임 전교라 했다.
향교의 총 책임자를 전교라 하는데 일제 강점기엔 격을 떨어뜨리느라
직원이라 했단다.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가 내려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훈도라 하였다.
훈도는 종 9품으로 가장 낮은 품계다.
임금의 능을 지키는 능참봉과 동격이다.
전임 전교는 47년생으로 올해 일흔 여덟이고 현임 전교는 그보다 일곱살
많은 40년생이셨다.
전교의 임기는 3년인데 올 해가 임기 마지막해라고 하였다.
몸이 불편하신지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를 못하셨다.
.................
...........
 
(혹 두분에게 피해가 갈 지 몰라 여섯 문장을 삭제했다)
..... 
 
이토록 굴욕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라 바로 바로 호응을 해드렸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반감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가해자가 반성과 사과가 없을 뿐 더러 비난과 야유를 퍼붓는다면
어찌 참을 수 있는가!
그 것도 이나라 최고 책임자인 ***이란 자가 가해자의 발바닥을
핥기에 여념이 없다면?
당장 그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어찌 낡다 하겠는가!
전통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 것이 진정한 보수다.
그런 의미에서 두분의 어르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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