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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

90년대 에로비디오와 애니메이션

by 만선생~ 2024. 9. 20.

 

90년대 비디오 대여점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에로 비디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부부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그렇다.
스토리 전개상 아이가 있어야 필요도 없고 아이가 있다는 설정을
해도 에로비디오에 아이를 출연시킬 부모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출연진을 적게 하고 촬영기간을 짧게 하는 것이 지상 목표다.
그런 면에선 에로 비디오는 여느 상업영화보다도 경제 논리에 충실했다.
극장에 내걸리는 상업영화를 찍다 망한 사람은 부지기수여도 비디오 출시를 목표로 한 에로물을

찍다가 망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중학생이었던 80년 초반.
은하철도 999란 애니메이션이 아이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나 역시 빼놓지 않고 보는 열혈 시청자였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 열차에 오른 철이와 메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긴 열차에 승무원은 선장 한 사람 뿐이고 승객은 철이와 메텔이 유일했다.
두 사람의 손님을 태우기 위해 그 큰 열차를 운행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비경제적이다.
그렇다면 제작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열차에 승객들이 앉아있는 장면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없다.
승객을 그리다 제작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질테다.
여느 회사처럼 애니메이션 회사 역시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은하철도 999 열차에 승객이 철이와 메텔 두사람밖에 없는 이유다.
오히려 승객이 단 두 사람 뿐이기에 우주공간을 달리는 기차의 적막감이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오늘 옛 추억에 다운받아놓았던 은하철도 999를 보는데 참 루즈했다.
엄청나게 몰입하며 봤던 장면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결국은 장면을 건너뛰면서 보다가 끄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에로 비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하면서 본 기억이 없다.
재생과 빨리감기를 반복하다 중간에 테이프를 꺼내는 일이 많았다.
늘 다른 영화를 빌려 볼 걸 그랬나 하며 후회했지만 당시는 그런 식으로 성적 욕구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신음소리조차 성우가 더빙으로 녹음했던 에로 비디오.
세월은 흐르고 IPTV(?)시장이 에로비디오 시장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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