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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11

보라색 교회 동네 교회.어느날 보니 보라색 벽돌로 바뀌어 있었다.주변 건물과 어우러지지 않아 절로 눈살이 찌뿌려졌다.대중이 있는 곳에 홀로 형광색 옷을 입고 나타난 것과 같다.덕분에 교회는 눈에 잘 띄게 되었다.그 것이 목표였다면 성공한 셈이다.오늘 밤길을 걷다 교회를 바라보니 전선이 앞을 가린다.얼기설기 정신이 없다.수많은 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캐롤로 반짝인다.교회 울타리로 심은 회양목에 전선을 칭칭 감은 것이다.아무리 말못하는 나무라도 밤새도록 빛공해에 시달리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2025.4.21 2025. 4. 21.
사패산 안골 어제 사패산 안골.두 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2018.4.20 2025. 4. 20.
나만의 바위 운동삼아 사패산 들머리에 있는 나만의 바위에 왔다.전세낸 건 아니고 아무도 오를 생각을 안해 나만의 바위가 됐다.하히힐을 신은게 아니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낮은 바위다.이따금 내려가는 사람이 힐끗 바라보는데 전혀 신경 안쓴다.일단 신발끈을 풀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눕는다.더위가 한풀 꺽인데다 바람이 이따금 한번씩 불어주니 그런대로 있을만 하다.벌레소리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그리고 호암사에서 들려오는 타종 소리가 좋다.이렇게 십여분 바위에서 뒹굴거리다 내려갈 생각이다.2024.8.26 2024. 10. 16.
사패산 범골 계곡 동네 뒷산인 사패산 범골 계곡에 왔다.졸졸졸 물흐르는 소리가 좋다.아무리 들어도 듣기싫지 않은.대신 물이 좀 더 많이 흐르면 시끄럽다.대화에 방해를 받는다.비가 온 뒤라 바위가 살짝 미끄럽다.비온 뒤 멋모르고 바위 위를 내딛다 낭패를 당한적 있어 조심조심이다.오십대 중후반.말년병장이 구르는 낙엽도 피해가듯 몸을 함부로 놀려선 안된다.무리하게 운동을 해서도 안되고 기분에 취해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을 마셔도 안된다.조금만 무리를 하면 다음날 힘을 못쓴다.지금은 나만의 바위인 용연바위에 올라 물을 한모금 마신뒤 누워 미처 못쓴 글을 쓰고 있다.내겐 가장 편하고 좋은 시간이다.* 나이가 들어서인가?일상적으로 쓰던 말들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버들치가 그렇다.오늘 계곡엔 다른 어느 때보다 버들치가 참 .. 2024. 10. 7.
용연이 바위 사패산 입구에 있는 용연이 바위에 왔다.적당히 땀흘려 기분은 좋은데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다.밤바다 산중턱인 호암사까지 오르는 영감님이 계셨다.자기가 너무 외롭다고 여자 좀 소개시켜달라고 하셨다.하지만 영감님 조건에 맞는 여자를 내가 알고 있을리 만무했다.하루는 영감님이 국립공원 사무소에 민원을 넣었다.어두워서 걷기가 힘들다고.민원처리는 너무나 빨랐다.다음날 바로 가로등 불빛이 등산로를 밝혔다.청정해야될 국립공원에 빛공해가 시작된 것이다.빛은 밤새 등산로를 밝힌다.등을 끄거나 조도를 좀 낮췄으면 좋겠는데...그래도 집가까이 언제라도 오를 수 있는 이런 바위가 있어 좋다. 2024.7.13 2024. 7. 16.
회룡사 계곡길 이희재 선생님 내외분과 미술평론가 최열선생님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회룡사 계곡길을 걸었다.비가 내린 뒤라 계곡물이 많았다.   2024.6.30 2024. 7. 12.
산길 밤마다 한시간남짓 산길을 걷는다. 처음엔 깜깜해 으스스 했는데 영감님 한분이 시청(?)에 진정을 해 밤새 불을 켜게 하였다. 전력낭비에다 빛공해를 유발하지만 다니다보니 어느덧 편안함에 길들여지고 말았다. 불이 들어오기 전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남들이 무서워 다니지 않는 길을 다닌다는... 하지만 지금은 의도치 않게 문명의 이기를 누린다. 인간이 편안함을 추구하면할수록 자연생태계는 파괴되고 결국 인간의 삶 또한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스터섬의 교훈을 잊지않아야한다. 지금이라도 불을 끈다면 으스스한 산길을 다닐 용의가 있다. 밤은 밤같아야한다. 2018.12.14 2023. 12. 17.
서울 용두동 골목길 어제 용두동 골목길에서 본 한옥. 1980년 초 용두동에 사는 작은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이런 기와집이었다. 작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이 살던 집. 우리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올라와 세들어 살았다. 작은 할아버지는 빡빡머리에 한복을 입으셨다. 댓님을 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른 앞에선 무릎을 꿇고 있어야하는 줄 알고 무릎을 꿇었더니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반면 육촌 동생들은 편안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고 했다. 사는게 넉넉치 않으니 우리를 살갑게 대하진 않았다. 그래서 명절날이 아니면 가지를 않았다. 그래도 한옥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불행이 아닐까 .. 2023. 11. 30.
서울 약령시장 앞길 어제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제기역 앞길을 걸었다. 그 유명한 약령시장 앞이다. 어린시절 제기동에 살았건만 방향이 헷갈려 장사하는 분에게 물었다. "제기역이 이쪽 맞나요?" "네" 거리는 경천동지할만큼 달라져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꿈에도 몰랐다. 어릴 때 제기역에서 미도파 백화점에 이르는 길은 한산했다.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약령시장과 경동시장의 외곽이었다. 미도파 백화점도 수지가 맞지 않아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가게는 제기역 안까지 이어져 있었고 역사엔 사람이 많았다. 예전과 비할바 아니었다. 과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0년 우리집은 제기동 골목길 단칸방에 한달을 살고 가까운 산동네로 이사를 갔다. 친구집에 놀러가려 몇개월만에 그 골목기로 와보니.. 2023.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