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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

만화 콘티

by 만선생~ 2023. 11. 29.

 

만화인들은 영화용어인 콘티를 빌려쓴 지 오래다.
영화에서 콘티가 밑그림이듯 만화에서 콘티는 만화의 설계도다.
나는 복사지에 지우개질을 해가며 콘티를 짠다.
초벌 두벌 세벌까지 짠다.
원고가 완성되는 순간 콘티는 쓸모가 없어진다.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가는 게 순서다.
그런데 복사지가 아깝다.
나는 콘티를 지우개로 빡빡 지운 뒤 다시 쓴다.
작업실 멤버인 후배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종이가 아까워서...”
후배는 그깟 복사지 얼마나 하냐며 지우개질 할 시간에 원고를 하라고 했다.
그 게 훨씬 이익이란다.
나도 그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값이 싸다해도 함부로 버려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저 복사지가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졌을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나는 실수로 음료수를 엎질러 재활용쓰레기 통으로 향하는
종이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지구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70억 인구가 모두 이런 식으로
종이를 소모하면 지구상에 한 그루 나무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조상들이 종이를 얼마나 아껴 썼는지 생각하면 도저히 허투로 버릴 수 없다.
만화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학교에 비치된 복사지를 나눠주었다.
정성껏 종이에 그림을 채워 나가길 바라면서.
아이들은 종이를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종이 한 장에 듬성듬성 그리는 건 둘째 치고 복사지가 아무렇게나 바닥을 뒹굴었다.
아무도 주우려 하지 않았고 복사지엔 아이들 발자국이 선명했다.
매 시간마다 그랬다.
나는 교실 바닥에 뒹구는 복사지를 볼 때마다 절망감이 엄습했다.
아무리 세상이 풍요로워졌다 해도 이렇게 종이를 함부로 버려선 안되었다.
자원이 한 정돼 있음을 가르쳐야 하고 생활 속에서 절약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소비를 진작해야 경제가 돌아가지만 그럼에도 아낄 건 아껴야 한다.
쓰지 않는 전등은 꺼야하고 자동차는 공회전을 시키지 않는 것이 옳다.
노파심일까?
만화수업을 나가면서 아이들이 이끌어나갈 세상은 어떨지 걱정아닌 걱정이 되었다.
 
 
 

댓글들

정*오
저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무실에서 물이나 차를 마실 때 머그를 사용합니다.
종이컵을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게 아깝기도 하고 자원을 함부로 낭비하는 모습이 싫어서요.
제가 사는 이 지구는 제 아들과 딸에게서 빌려 쓰는 거라서 함부로 훼손하면 안되잖아요.

박*미
나무를 많이 심어야죠.
다행히 종이할 만큼 나무가 잘 자란대요.미래를 너무 걱정마시라.
종이 쓰는 세대도 곧 사라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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