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75 지장보살 지장보살 99년 오토바이로 전국 여행 중 담양 금성산에 있는 연동사란 절에서 열흘정도생활했었다.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절이었는데 고려시대 석불과 3층탑이 인상깊었다.오랫동안 폐사되었던 절을 담양 출신인 원행스님이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당시 스님 나이가 삼십대 후반.밑으로 나이 사십이 넘은 행자 한 분이 있었고 다른 절 스님들이 오며 하며 하였다.여행자인 나는 명목상 행자 노릇을 하며 잡일을 거들었다.하지만 일머리가 없어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었다.스님의 권유에 따라 중노릇을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속세에 대한 욕망을누를 길이 없었다.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땡중이라 일컬어도 수행자는 수행자였다.두 분은 새벽이면 석불 앞에 나가 예불을 드렸다.나도 두 .. 2024. 10. 18. 江后浪推前浪(장강후랑추전랑) 江后浪推前浪(장강후랑추전랑)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민다.사물이나 사람은 끊임없이 새롭게 교체되기 마련이다. 장강의 앞물결이 어찌뒷물결을 막을 쏘냐, 그렇게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다만 스스로 알아채지 못함이 애석할 뿐이로다. 2024. 10. 18. 나의 첫 완성 원고 중고교 시절 만화를 그리면 끝을 낼 수 없었다.일단 시작은 했는데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몰라 몇 페이지 그리다 그만두고마는 것이다.전체구상 없이 작품을 시작했을 때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이다.세상 어디에도 그리다 만 만화를 보아줄 이들은 없다.길건 짧건 끝을 맺어야 생명력을 얻는다.내가 처음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만화가 아닌 소설로 제목은 ‘곰사냥’.분량은 아주 짧았다.겨우 노트 몇 페이지.그 것도 글씨를 아주 헐겁게 써서 200자 원고지로 치면 열 서너장 쯤 되지않을까 싶다.원고는 잃어버린지 오래다.내용도 가물가물한데 기억을 되살리자면 이렇다.산골짜기 시골 마을아버지 친구가 서울서 내려와 집에 머무는데 직업이 사냥꾼이다.아버지는 항상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친구가.. 2024. 10. 18. 글은 쓰면 쓸 수록 쓸거리가 늘어난다 이상한 게 글을 쓰면 쓸수록 쓸 이야기들이 계속해 생겨난다.글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것이다.평소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글을 쓰라하면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쓸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이야기가 있어도 쓰는 방법을 모른다.질량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단다.일생동안 한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의 양이 정해져 있어 어느 한시기 어마어마한고통을 당하면 나머지 시기엔 고통이 덜하다는 거다.고통 뿐 아니라 연애, 운, 등등 여러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하지만 글쓰기엔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글을 많이 썼던 사람은 쓸게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만화 스토리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작은 이야기라도 써봤던 사람은 쓸 이야기가 또 생겨난다.한 번밖에 쓰지 않은 사람은 한 번밖에 생겨나지 않은데 반.. 2024. 10. 18. 반야심경 마음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엄니께선 절에 다니기 시작하셨다.부처님 전에 엎드려 마음에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렸다.더불어 아픈 몸이 낫기를 빌었다.자식들이 잘되길 비는 건 물어보나마나다.하루는 비구니 스님께서 어머니께 반야심경을 건네주시었다.그리고 불교의 정수가 담겨있는 말씀이라며 외우며 절을 하면 좋다고 말씀하셨다.하지만 어머니에게 반야심경은 너무 어려웠다.뜻도 모르는 말을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외우라니...더구나 한자를 전혀 모르는 어머니였다.색즉시공에서 색이 빛색인지를 모르니 외워질리가 없었다.더구나 스님께선 절에 와도 별 반기는 기색이 없었다.냉랭히 자기 할 일만 하시는 거다.갈 때도 별 말이 없었다.가까운 절도 아니고 아주 멀히 기차타고 아주 왔는데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지 않는 스님.서운해도 .. 2024. 10. 18. 삽화로 밥 벌어먹고 살기 만화가 안돼 삽화로 밥벌이를 해볼까 하던 시절이 있었다.말하자면 전업이다.그리하여 포트폴리오가 될만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포트폴리오가 조금 쌓이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친한 선배에게 전업에대한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 놓았다.선배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야~ 그림으로 날고 기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아...예... 그... 그렇죠..”나는 기가 꺾여 대꾸 한마디 못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삽화계는 어마무시한 고수들이 득시글거리는 무림의 세계!나같은 촌뜨기 무사가 도전장을 낸다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다.그간 포트폴리오로 그린 그림을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출판사들을 찾아다녔다.하루에 두 곳 많으면 세 곳이었다.열흘 정도를 그렇게 돌아다녔다.놀랍게도 출판사 직원 .. 2024. 10. 18. 셀카 고자이쇼다케 御在所岳(1212m) 셀카2019년 일본 미에현에 있는 고자이쇼다케 御在所岳(1212m)에 올랐는데 정말 신비로웠다.짙게 드리운 구름으로 인해 마치 선계에 와있는 듯 했다.언젠가 비온뒤 올랐던 월출산 이래 이런 구름은 처음이다.멋진 곳에 가면 항상 인증 사진을 찎는다.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기록의 의미도 있다.인증사진이 없다면 그 곳에 다녀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기억은 곧 지워지기 마련이고 글은 한계가 있다.'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달리 나온게 아니다.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만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혼자 얼마든지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다.셀카봉이 없어도 좋다.부분적으로나마 멋진 배경을 담아낼 수 있다.고자이쇼다케도 그렇다.누군가 그런다.사기라고.지금의 모습과 .. 2024. 10. 18. 택호 택호강경댁 원평댁 이서댁 부용댁...우리 어릴 때만 해도 택호를 많이 썼다.이름을 부르기가 좀 뭣하니 시집오기 전 살던 고장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우리 외할머니는 부안 연동이란 곳에서 시집을 오셔 연동댁이라 불렸다.미을 사람 뿐 아니라 외할아버지도 그리 불렀다고 한다.외할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오바 속에 있는 50원을 연동댁에 주라'는 것이었다.친할머니는 해방이되던 해 만주에서 돌아가셨다.전해지는 택호가 없다.오늘 같이 비가오는 날엔 아버지는 꼭 술을 드셨다.한 잔 두잔 한 병 두병......술에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는 "아이고 어머니~ "하며 우셨는데 가장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게 정말 불만이었다.한국 전쟁이 끝난 뒤 결혼한 어머니는 시어머니 얼굴을 뵌 적이 없다.결혼 이후 고생을 이루말할 수 없이 .. 2024. 10. 18. 법륜 스님님 한 극우 유튜버가 어떤 사안으로 법륜스님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하더라."법륜스님님~"스님이 존칭인데 거기 또 님을 또 붙이니 야유와 조롱이 아닐 수 없다.아니 앞뒤 정황을 살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유튜버는 모태신앙임을 밝힌 개신교 신자다.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다보니 스님을 만날 일이 없었을 거다.절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신부나 목사를 만날 일이 드문 것과 마찬가지다.내가 만난 개신교인들은 다른 종교에 무관심 했다.말은 안하지만 속으론 다른 종교인을 사탄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언젠가 목사 과정을 밟고있는 한 젊은이가 우리집에 칮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나를 전도하려 하려하는 것이다.나는 이야기 도중 나는 동학을 화제로 꺼냈다.젊은이는 동학을 몰랐다.나는 어이가 없었고 더이상 이야기 할 필요.. 2024. 10. 18. 이전 1 ··· 254 255 256 257 258 259 260 ··· 3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