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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89

고려사 열전을 읽으며 안도치 [ 安都赤 ] 공민왕 12년, 역적들이 흥왕사(興王寺)의 행궁에 쳐들어와 문지기를 죽인 후 곧장 침전으로 가 환관 강원길(姜元吉)을 죽였다. 숙위(宿衛)가 모두 달아나 숨어버리자 이강달(李剛達)이 왕을 업고 창문을 통해 달아났다. 안도치는 생김새가 왕과 비슷한지라 왕을 대신해 죽으려 결심하고 침실에 들어가 누워있자 역적들이 그를 왕으로 착각하고 살해해버렸다. 고려사 환관열전에 나와있는 안도치 이야기. 그는 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려야했을까? 왕의 목숨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을까? 밝은 햇살아래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고... 그라고 왜 그같은 삶의 기쁨을 누리고 싶지 않았을까? 뜨문 뜨문 읽는 고려사절요와 고려사... 스크롤로 내리읽는 모니터 화면이 피로 얼룩져있는.. 2023. 11. 15.
머리숱 머리를 감으면 머리숱이 참 많이도 빠진다. 하루를 건너 뛰면 뭉터기로 잡힌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지금의 모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빠진만큼 자란다는데 그말이 사실인가 보다. 솔직히 머리숱이 많지는 않다. 굵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은근 신경이 쓰인다. 머리숱이 처져있음 기분이 안좋고 머리숱이 살아나면 기분이 좋다. 그날의 컨디션을 나타내주는 지표가 머리숱인 셈이다. 울울창창한 머리숱의 소유자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 중 한사람이다. 봉하마을에서 연호하는 시민들께 답하느라 밀집모자를 벗어올릴 때 드러나던 머리숱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이태 전이다. 어느날 동생이 왜이리 머리숱이 없냐고 물었다. 거울을 보니 머리숱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머릿살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머.. 2023. 11. 15.
장애인 활동 보조인 몇년 전 노들야학이란 곳에서 장애인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았다. 닷새동안 하루 8시간씩 총 40시간이다. 교육비로 10만원을 냈다. 특별한 사명의식이 있어서 받은 교육이 아니다. 생계수단이었다. 돈벌이가 정말정말 없으면 하려고 말이다.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나서본 적은 없다. 바꿔말하면 그동안 만화만 그려 먹고살았던 이야기다. 충분치 않은 수입이지만 그랬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알 수가없다. 만화로 돈을 전혀 벌 수가 없어 장애인활동보조인 활동을 해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패한 삶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여건에 맞춰살아갈 뿐이다. 내게 진정 실패란 것은 만화로 돈을 벌지 못할 때가 아니다. 마음속에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지 .. 2023. 11. 15.
조국 장관 단상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박재동 선생님 소개로 한겨레신문에 릴레이 만화를 연재했었다. 한 컷짜리 만화인데 많으면 한 달에 세 번 적으면 두번 실렸고 고료는 매달 10일 경 정산해 받았다. 작은 지면이지만 중앙일간지에 작품을 연재한다는 것에 뿌듯했고 고정수입이 있어 좋았다. 2010년 10월엔 존재감도 미약한 나를 신문사에서 불러주었다. 필진의밤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지면으로만 만나던 유명필자들을 직접 가까이 보니 꿈인가 생시인가 하였다. 경품으로 한홍구 교수가 쓴 대한민국 한세트와 조지오웰의 "나는 왜쓰는가"를 받았다. 그 때 조국 서울대 교수가 강연을 했다. 저사람은 뭐길래 이 자리에서 강연을 하나 좀 의아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인물이 참 좋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생기.. 2023. 11. 14.
용불용설 [用不用說] 후배와 대화 중 용불용설을 말하였다. 만화란게 한 번 손을 놓으면 다시 하기 힘들단 뜻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든 예가 만화를 그리다 소설가로 변신을 꾀하는 이들이다. 소설로 성공을 하든 하지않든 다시 만화를 그리기가 쉽진 않으리란 거다. 왜냐면 만화는 워낙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다시 그릴 엄두가 안난다. 한마디로 고생을 하기 싫은 것이다. 폭우 속을 달리고 있는 사람은 폭우를 뚫고 계속 달려도 폭우에서 한 발 비껴난 사람은 폭우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은 이치다. 이는 나에게도 해당돼 한번 발을 빼면 만화를 그리기 싫어질 거 같다. 그러니까 비를 맞고 있을 때 계속 비를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화그리는 것 외엔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방편이 없다. 월 50을 버나 월 100을 .. 2023. 11. 14.
안경을 벗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써오다 지난해 말 안경을 벗었다. 다초점 인공수정체 수술을 한 것이다. 기대만큼 시력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긴 하다. 평생동안 써온 안경이라 무의식중 안경을 쓰며 했던 행동을 하곤 한다. 세수 뒤에 안경을 찾거나 거리를 걷다 안경이 없는 걸 깨닫고 불안감을 느끼는 등등이다. 안경은 얼만큼 한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걸까?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현세 만화의 빌런인 마동탁은 안경을 써서 더욱 거만해 보인다. 정가네소사의 우리 외할아버지는 둥근 안경을 써 식민지시대의 인텔리로 보인다. 배금택 만화 영심이에서 영심이를 좋아하는 안경태는 안경을 써 소심한 모범생으로 보인다. 옛날 어른들은 여자가 안경을 쓴채 고개를 들고 다니면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 2023. 11. 14.
100권 사인 100권 사인을 보냈다. 숫자가 맞지 않아 중복된 사인이 있나 찾아봤더니 중복 사인이 있었다. 칼로 내지를 잘라낸 뒤 다시 다시 하였다. 그럼에도 명단에서 1권이 모자라 내가 가지고 있는 책으로 사인을 하였다. 101권의 사이본 책. 택배회사 직원에게 물으니 빠르면 월요일 늦으면 화요일 도착할 거라 했다. 무게로 요금을 매기는 우체국과 달리 덩어리로 요금을 매기는 거 같아 다행이었다. 책을 낸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이벤트. 책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이벤트는 마무리 된다. 2022년 11월 12일에 쓴 일기 2023. 11. 12.
두가지 꿈 두가지 꿈. 하나 윤석열이 작은형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난 윤석열의 비위 사실을 사장인 형과 직원들 앞에서 낱낱이 고발하였다. 형은 나의 용기를 칭찬했다. 나는 당장 윤석열이 잘리는 줄 알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형은 윤석열을 내치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끌어안았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놈은 형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라고. 제발 좀 짤라. 짤르라고" 나의 소리는 형에게 전달되지 않고 어둠 속에 흩어져 맴돌 뿐이었다. 둘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한 선배 만화가 K선생님께서 내게 데셍을 부탁해오셨다. 데셍고료가 상당하였다. 무엇보다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그분의 데셍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인데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니 황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장의 내 원고가 급해 그 분.. 2023. 11. 12.
요새 노래 장미빛~ 장미빛~ 스카프만 보면은 내 눈은 빛나네~ 걸음이 멈춰지네~ 오늘 아침에도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역시나 80년대 노래다. 어제는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을 흥얼거렸다. 90년대 노래도 흥얼거리지만 빈도 수가 낮고 2000년대는 코요태가 부른 파란이나 패션을 흥얼거리는게 전부다. 요새 노래는 하나도 모르겠다. 들어도 귀에 안들어온다. 젊은이들의 생활과 감성을 알아야는데 쉽지 않다. 세대차이란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지 싶다. 그리고 왜색 짙은 뽕짝만 죽어라 불러대는 노친네들이 이해가 간다.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과 이명박근혜를 찎는 건 이해하기 힘들지만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인간본성을 생각하면 그 또한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관성의 힘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지금 20대 .. 2023.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