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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187

업보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단체 회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두어 구비만 넘으면 MT 장소에 도착하리라. 모처럼 맛보는 한가로움... 그 때다. "어!" 차창너머로 시커먼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연기 아래엔 불길이 바람을 타고 번졌다. 산불이었다. "장관이네" "아니 이 놈의 영감이" 무심코 뱉은 나의 말에 앞자리에 있던 후배가 혀를 차며 바라보았다. 아차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행히 불은 소방헬기가 와 진화되는 듯 했다. 그날 지역뉴스에도 나오지 않은 걸 보면 큰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따지고보면 불구경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산불은 분명 안타깝고 일어나선 안되지만 좀처럼 볼 수없는 눈요기이기도 하다... 2024. 1. 29.
무협지 대만 무협작가 고룡의 문장은 짧은 것으로 유명하다.적은 품으로 원고지 한 매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아마도 원고료가 매당 얼마씩 책정되었나보다.모르긴해도 한국의 무협지 작가들도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어릴 때 만화방에서 잠깐넘겨본 무협지엔 한페이지에 글씨가 몇자 되지 않았다.후루룩 넘기다보면 어느새 한권을 다 읽게되는 것이다.근래 출간되는 한국 소설도 페이지당 글자 수가 얼마되지 않는다.활자도 커지고 행과 행사이도 넓어져 마치 어린이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그에 반해 만화책 활자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지식교양만화는 더 그렇다.한페이지에 담긴 정보량이 엄청나다.소설책 한페이지를 쓰는 공력의 몇배 아니 몇십배가 투여된다.그럼에도 고료는 소설책과 다르지 않고 사회적 평가도 낮다.극단적으로 어떤이들은 만화책.. 2024. 1. 25.
아프리카 열대우림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첫 이미지는 끝없이 펼쳐진 열대우림이었다. 아마도 타잔의 영향인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한번 쯤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배반을 당한다. 절대선이라 생각했던 국군이 베트남에서 행한 민간인 학살이라든지 악의 화신이라 믿었던 조조가 애민정신에 바탕을 둔 복지제도를 시행했다는 사실 앞에서 혼란스럽다. 아프리카가 내겐 그렇다. 아프리카엔 끝없는 열대우림이 펼쳐저 있어야 하건만 실상은 건조한 사바나지대와 사막이 대부분이다. 농지개간으로 숲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동물의왕국에서 보는 세렝게티같은 초원은 아주 일부분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침탈과 잦은 내전으로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은 파괴되었고 사막지대는 점점 늘어간다. 수천년 전 나일강 일대가 열.. 2024. 1. 25.
쓰레기 아이스크림을 먹고나니 쓰레기가 손에 들려 있었다. 포장지였다. 먹기 전엔 유용했는데 먹고난 뒤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나는 고민했다. 길바닥에 버리자니 양심이 허용치 않았고 계속 들고 있자니 귀찮았다. 그때다. 마침 청소부 아저씨가 리어커를 끌고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가 순간 멈칫했다. 아무리 청소부가 끄는 리어커라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선 안될 것 같았다. 아저씨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쓰레기를 버려도 되냐며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붙임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였다. 나는 그렇게 청소부 아저씨가 끄는 리어커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쓰레기통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2024. 1. 24.
동물의 왕국 5 맛 사바나 초원의 최상위 포식자는 사자다. 하이에나가 있지만 일대 일로 붙으면 사자를 당할 수 없다. 동물의 왕국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자는 일생 몇 종류의 먹이를 사냥할까? 누우 임펠라 영양 얼룩말 멧돼지 악어... 헤아려보니 몇 안된다.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먹이쟁탈로 충분히 맛을 음미할 수가 없다. 또 하이애나가 먹이를 가로채기 전에 최대한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 사바나 초원의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의 운명이다. 초식동물들도 맛에 대한 경험치가 많지 않다. 일생동안 몇가지 종류의 풀과 나뭇잎을 먹을 뿐이다. 그리고 포식자들이 항상 자신을 노리고 있기에 맛을 충분히 음미하기 힘들다. 새들은 어떤가? 곤충은 또 어떤가? 그들 또한 일생 경험할 수 있는 맛은 몇 않된다. 어쩌면 일생 한가지 맛.. 2024. 1. 24.
해괴한 논리 해괴한 논리.습관적으로 불법다운로드 영화를 보는 형이 있었다."헐리우드 영화는 그렇다치고 우리나라 영화는 돈내고 보시죠.만화나 영화나 불법다운로드로힘들어하는데...""아니야 난 파이를 키워주고 있는 거야.많이 유통될수록 파이가 커지고 그러면 결국 이익이 나거든.목호의난도 100만명이 스캔본으로 다운로드 해 봤다고치자.그럼 화제가 돼 종이책도 엄청 팔릴 걸."어이가 없었다.신종 카피래프트운동을 하자는 건가?그리고 불법으로 다운로드되는 모든 작품이 파이가 커져 수익을나게 하는것도 아닐테고."만드는 사람이 싫다고 하잖아요.형도 창작자인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요?"역정을 내며 말했지만 형의 논리는 그대로였다.워낙 없이 살다보니 불법으로 다운받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그럼 최소한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져야는.. 2024. 1. 17.
태봉 목간 유물 https://v.daum.net/v/20231115201255504?fbclid=IwAR1LvWKuV1GB9QsEanWrn-gxIGOc4XeGdmD879L4ES5SioOMc6JdIlZxtOI  내가 다녀온 양주 대모산성에서 궁예의 나라 태봉 유물이 나왔단다.목간에 쓰여진 글씨 123자.가장 눈에 띄는 건 정개라는 연호다.신라, 고려, 조선에선 감히 쓰지 못했던 연호를 태봉국에선 쓰고 있었던 거다.(고려는 일시적으로 연호를 썼었고 조선은 나라가 기울어가던 대한제국 시절에 겨우 썼다.)태봉국 시절 중국은 혼란기였다.강력한 통일왕조가 들어서지 못한채 수많은 나라가 명멸하고 있었다.때문에 중국 눈치를 보지않고 독자적인 연호를 쓸 수 있었다.한반도 중부지방에 18년간 존속했던 나라 태봉.궁예는 왕조를 존속하지 .. 2024. 1. 17.
아버지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오시면 아버지는 메모를 꼭 한 장씩 남겨두셨다. '빨래는 세탁기에 돌려 베란다에 널었고 국은 무우와 함께 끓여놨으니 뎁혀서 먹어라.' 등등 모두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메모는 철저히 정보전달용으로 어떠한 문학적 수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곳곳에 틀린 맞춤법으로 인해 교육수준이 높지 않음을 드러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자신의 고독한 심경을 담은 한시 한 편과 한글시 두 편을 남겼다. 나는 아버지가 시를 썼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시의 수준이었다. 정보전달용으로 쓰던 메모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시인이 되었던 아버지.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를 쓴 게 아니었다. 만약 유품.. 2024. 1. 17.
트로트 트로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트로트와 뽕작을 좋아한다. 황성옛터를 들으며 처연한 심사에 빠져들고 장윤정의 어머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오늘도 배호 나훈아 남진 심수봉 최진희 송대관 태진아가 부르는 노래에 울고 웃는다. 서주경 같은 간드러진 창법의 노래를 들으면 연애를 하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10여년 전 공동작업실을 쓸 때다. 하루는 귀가 심심하여 트로트를 한 번 틀었더니 룸메이트인 후배가 괴성을 질렀다. "형~ 트로트는... 제발..." 이후 후배는 나를 문화적으로 후진 사람 취급을 했다. 만약 내가 비틀즈나 롤링스톤스 셀린디옹의 노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김광석이나 정태춘 이문세 신효범 등등의 노래를 들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다. 물론 나도 .. 2024.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