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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98

만화 단상 넷 1 진득하게 자기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적고 알량한 밑천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사람은 너무나 많다. 2 만화가에게 크로키는 양날의 칼이다. 안하면 그림이 정형화되기 쉽고 너무 열심히 하면 창작에 대한 갈증이 해소돼 만화를 안그리게 된다. 글쟁이도 마찬가지. 페북글을 너무 열심히 쓰다보면 그자체로 갈증이 풀려 정작 써야할 글은 안쓰거나 소홀히하게 된다. 3 친한형이 유머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난 형의 말이 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단 말로 들렸다. 4 간간이 톡으로 말걸어오던 후배가 이젠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새로 이성친구가 생긴 건가? 아니면 나란 사람에 실망한건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던 후배가 다른 이의 글에 좋아요를 눌.. 2023. 12. 17.
강감찬 장군 2023년 말, 고려 특수가 일고 있다. KBS 대하 드라마 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때 맞춰 원작소설인 "고려거란전쟁"(길승수 지음)이 재출간되어 세일즈포인트가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더하여 수많은 유튜버들이 방송에서 "고려 거란 전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에 대한 조명도 활발하다. 강감찬 장군은 우리 큰형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강감찬 장군을 다룬 어린이 위인전에서 제방을 터트려 거란군을 몰살하는 장면은 어린 형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 이후 형은 군인이 되고자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면 입학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 다른 학과는 쳐다볼 이유가. 없었다 사관학교에 원서를 넣은 형. 하지만 형은 탈락했다. 연좌제 때.. 2023. 12. 10.
지자체 의뢰 그림 지자체에서 그림을 의뢰받았는데 거절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예상대로 재미가 너무나 없었기 때문. 이런저런 내 만화 작업을 핑게로 기한을 미루고 미루었다. 원고 작업이 왜 이리도 재밌는 것인지 내가 쓴 스토리와 그림에 감동했다. 당장 돈으로 환원되진 않지만 원고작업을 하는 내내 행복했다. 하지만 지자체 그림을 마냥 미룰 수는 없었다. 아... 한 숨이 푹푹나온다. 동화책 삽화를 그릴 때도 그랬었지만 역시 가슴이 뛰지 않는다. 의뢰용 그림의 한계다. 내가 기획한 것을 쓰고 그릴 때 비로소 심장이 뛰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뢰용 그림을 대충 그리는 건 아니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없다. 그러니 더 고생스러운 거다. 어제 시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넘겼더니 수정사항이 몇 개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내 만화 원고 작.. 2023. 12. 2.
선택 두 사람의 만화가가 있다. 한 사람은 재미가 좀 떨어지지만 마감을 칼같이 잘 지켰다. 아니 마감 며칠 전 원고를 보내와 편집자를 놀라게 했다. 이런 만화가만 있다면 편집자 생활도 괜찮을텐데... 또 한사람의 만화가는 마감날짜가 며칠이나 지난 다음 원고를 보내왔다. 아무리 원고마감을 독촉해도 아직 덜 됐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만화가... 화가났다. 당신 때문에 일정이 얼마나 차질을 빚었는데... 편집자는 차마 앞에선 못하고 뒤로 쌍욕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잡지가 나오고 앙케이트 조사를 했다. 마감을 칼같이 지킨 만화가의 작품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동료편집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감날짜를 며칠이나 어긴 만화가의 작품엔 반응이 뜨거웠다. 실린 작풍 중에 가장 재밌다는 거였다. 다음호를 준비하는 편집자의.. 2023. 12. 2.
돌아오라 용연아 87년 작업실 형이 민중잡지 "청춘"에 정화진 원작의 단편만화 '쇳물처럼'을 발표하였다. 작업과정을 내내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형은 기억에 남을만한 컷을 하나 그렸다. 구인광고게시판을 그리면서 내 이름을 집어넣은 것이다. 돌아오라 용연아 모든걸 용서하마 962-8967 덕분에 당시 우리집 전화번호가 962 8967 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용연이는 언제 돌아온겨? 2023. 11. 30.
만화 콘티 만화인들은 영화용어인 콘티를 빌려쓴 지 오래다. 영화에서 콘티가 밑그림이듯 만화에서 콘티는 만화의 설계도다. 나는 복사지에 지우개질을 해가며 콘티를 짠다. 초벌 두벌 세벌까지 짠다. 원고가 완성되는 순간 콘티는 쓸모가 없어진다.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가는 게 순서다. 그런데 복사지가 아깝다. 나는 콘티를 지우개로 빡빡 지운 뒤 다시 쓴다. 작업실 멤버인 후배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종이가 아까워서...” 후배는 그깟 복사지 얼마나 하냐며 지우개질 할 시간에 원고를 하라고 했다. 그 게 훨씬 이익이란다. 나도 그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값이 싸다해도 함부로 버려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저 복사지가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졌을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나.. 2023. 11. 29.
백성민 선생님 1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음으로 백성민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사모님께선 토마토 쥬스를 내오셨다. 직접 갈아만든 쥬스였다. 콜라나 사이다처럼 시원하지 않고 껄죽한 맛이 별로였다. 닝닝하다고 해야하나? 세월이 흘러 어쩌다 맛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날 먹었던 토마토쥬스가 생각난다. 콜라나 사이다같은 청량감은 없지만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앞으론 탄산음료보다 보이차나 직접 갈아만든 토마토 쥬스를 마셔야겠단 생각을 한다. 2 선생님께선 크리스찬이시다. 어쩌다 댁에 놀러가면 십자가와 함께 예수상이 벽 한 면에 걸려 있었고 탁자엔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일요일엔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가신다고 하였다. 교회에 너무 깊이 빠져 작품을 못하게 된 친구 이야기를 하시면서 선생님은 역사만화가이시다. 현대를 배경으로 .. 2023. 11. 28.
나는 정말 만화를 그리고 싶은 걸까? 나는 정말 만화를 그리고 싶은 걸까? 어느날 생활 때문에 만화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선배와 나들이를 하였다. 차를 타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선배가 말했다. "아... 만화 그리고 싶다." 이후 선배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쉬었다. 내가 동학 공모전이 있으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떠냐 물었다. 역사엔 관심이 없어 하기 힘들다 하였다. 다른 자리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말했다. 다양성 만화에 한번 지원해 보는 건 어떠냐고. 선배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다양성 만화에 지원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마감이 싫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단다. 주류만화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 다양성 만화는 작가로서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지원금이 나오는데 안하면 바보다. 물론 아무 작품이나 지원을.. 2023. 11. 27.
사랑 사랑 사랑이란 그렇다. 내가 준만큼 비례해 돌아오지 않는다. 남녀간의 사랑이 그렇고 부모자식과의 사랑이 그렇다. 여기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만화만 생각해온 사람의 작품이 있다. 또 만화에 큰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지만 우연찮은 계기로 만화를 그리게 된 사람의 작품이 있다. 비교하자면 후자가 신선하다. 전자의 작품은 기존방식에 길들여져 새로운 맛이 없는 반면 후자의 작품은 다르다. 기존 방식과 다른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항상 봐왔던 스타일의 만화보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스타일의 만화를 먼저 찾는다.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순교자의 자세로 만화를 그려온 이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독자는 냉정하니까.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만화를 사랑하여 순교자의 자세로 만화를 그려왔다. 당연 기존 스타일을 답.. 2023.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