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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30

만화 콘티 만화인들은 영화용어인 콘티를 빌려쓴 지 오래다. 영화에서 콘티가 밑그림이듯 만화에서 콘티는 만화의 설계도다. 나는 복사지에 지우개질을 해가며 콘티를 짠다. 초벌 두벌 세벌까지 짠다. 원고가 완성되는 순간 콘티는 쓸모가 없어진다.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가는 게 순서다. 그런데 복사지가 아깝다. 나는 콘티를 지우개로 빡빡 지운 뒤 다시 쓴다. 작업실 멤버인 후배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종이가 아까워서...” 후배는 그깟 복사지 얼마나 하냐며 지우개질 할 시간에 원고를 하라고 했다. 그 게 훨씬 이익이란다. 나도 그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값이 싸다해도 함부로 버려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저 복사지가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졌을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나.. 2023. 11. 29.
백성민 선생님 1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음으로 백성민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사모님께선 토마토 쥬스를 내오셨다. 직접 갈아만든 쥬스였다. 콜라나 사이다처럼 시원하지 않고 껄죽한 맛이 별로였다. 닝닝하다고 해야하나? 세월이 흘러 어쩌다 맛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날 먹었던 토마토쥬스가 생각난다. 콜라나 사이다같은 청량감은 없지만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앞으론 탄산음료보다 보이차나 직접 갈아만든 토마토 쥬스를 마셔야겠단 생각을 한다. 2 선생님께선 크리스찬이시다. 어쩌다 댁에 놀러가면 십자가와 함께 예수상이 벽 한 면에 걸려 있었고 탁자엔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일요일엔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가신다고 하였다. 교회에 너무 깊이 빠져 작품을 못하게 된 친구 이야기를 하시면서 선생님은 역사만화가이시다. 현대를 배경으로 .. 2023. 11. 28.
나는 정말 만화를 그리고 싶은 걸까? 나는 정말 만화를 그리고 싶은 걸까? 어느날 생활 때문에 만화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선배와 나들이를 하였다. 차를 타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선배가 말했다. "아... 만화 그리고 싶다." 이후 선배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쉬었다. 내가 동학 공모전이 있으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떠냐 물었다. 역사엔 관심이 없어 하기 힘들다 하였다. 다른 자리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말했다. 다양성 만화에 한번 지원해 보는 건 어떠냐고. 선배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다양성 만화에 지원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마감이 싫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단다. 주류만화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 다양성 만화는 작가로서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지원금이 나오는데 안하면 바보다. 물론 아무 작품이나 지원을.. 2023. 11. 27.
사랑 사랑 사랑이란 그렇다. 내가 준만큼 비례해 돌아오지 않는다. 남녀간의 사랑이 그렇고 부모자식과의 사랑이 그렇다. 여기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만화만 생각해온 사람의 작품이 있다. 또 만화에 큰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지만 우연찮은 계기로 만화를 그리게 된 사람의 작품이 있다. 비교하자면 후자가 신선하다. 전자의 작품은 기존방식에 길들여져 새로운 맛이 없는 반면 후자의 작품은 다르다. 기존 방식과 다른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항상 봐왔던 스타일의 만화보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스타일의 만화를 먼저 찾는다.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순교자의 자세로 만화를 그려온 이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독자는 냉정하니까.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만화를 사랑하여 순교자의 자세로 만화를 그려왔다. 당연 기존 스타일을 답.. 2023. 11. 27.
스스로 모델이 되다 장면연출을 위해 모델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상상으론 도저히 그릴 수 없는 포즈 말입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부탁을 하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없습니다. 궁리 끝에 관리사무소로 내려가 경리주임에게 이런 장면을 그려야하니 이렇게 찍어달라 부탁을 합니다. 스스로 모델이 된 것입니다. 30센티 자를 목에 들이대고 연출을 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유홍석선생의 자결 씬을 그립니다. 헌데 사진 속 제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다르네요.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는 희끗하고 볼에는 살이 덕지덕지 달라붙었습니다. 흐르는 것은 세월이라. 젊은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초로의 사내가 쾡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합니다. 우리 나이 쉬흔 둘. 죽지않고 살아 있음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앞으로 얼마동안 살 수 있을지 알 .. 2023. 11. 27.
사회 복지관 수업을 마치며 오늘은 사회복지관 마지막 수업이다. 지지난주 월요일. 작품집 발간을 위해 그동안 수업을 하며 느낀 점을 쓰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한시간 반동안 꼼짝하지 않고 무언가를 쓰는 것이다. A4 용지를 빽빽하게 채운 글. 아이의 집중력에 놀랐고 글솜씨에 놀랐다. 그나저나 옮겨쓰자니 꽤나 힘들구나야.. 만화반 활동을 하면 느낀 점 ** 욱 지난 12주 동안 진행했던 만화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문자가 왔다. 만화반을 모집한다고.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그림은 좋아하지만 그리는 실력은 없었다. 그 문자가 오고나서, 아, 나는 이곳에서 기초와 실력을 기를 수 있을까 하고 망설임 없이 참가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배우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그림을 그릴 의욕이 사라져 버리기에,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지도 모른.. 2023. 11. 20.
내가 완성한 첫 이야기 이야기를 처음으로 완결지어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만화가가 되기위해선 스토리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문예반에 들었는데 그날 선생님께서 내준 숙제가 소설 창작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랬던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버거운 숙제인데 나는 소설을 써냈다. 분량은 16절지 시험지로 다섯매. 제목은 '곰사냥'이었다. 어릴 때 우리집을 찾아와 열흘정도 머물다간 아버지 친구가 모델이었다. 약장사였는데 내가 많이 따랐다. 아마도 서울에서 왔기 때문이리라. 소설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대략 이렇다. 어느날 가난한 산골마을에 외지인이 나타난다. 아버지의 고향친구다. 아저씨는 사냥꾼으로 곰을 사냥하면 큰돈을 벌 수있을 거라고 한다. 아버지는 친구를 나무란다. 헛된꿈 꾸지말고 현실에 뿌리박으며 착실히 살아가.. 2023. 11. 18.
오토모 가츠히로 大友克洋 일본 만화가 오토모 가츠히로大友克洋. 그의 만화는 자국인 일본은 물론 바다 건너 한국 만화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그의 만화는 만화가들의 교과서였다. 만화가 작업실 어딜 가나 그의 대표작인 "아키라"가 꽂혀 있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명동 중국대사관 앞 서점에서 아키라 뿐 아키라 이전 작품들도 모조리 구입했다. 더하여 아키라에 있는 컷들을 따라 그렸다. 따라 그리면 그릴수록 그가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세상 또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그처럼 잘 그릴 순 없을 것이다. 천재라도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키라가 워낙 유명하지만 나는 아키라 이전 작품들이 더 좋았다. 20대 초반 그린 단편집들은 원숙함 그 자체였다. 기량이 아주 뛰어난 50대 작가가 그렸다.. 2023. 11. 17.
일어나요 강귀찬 김한조 작가의 책이 나와 구입했다. 제목은 "일어나요 강귀찬". 책을 펼쳤는데 속지에 그림이 있다. 인쇄 그림인지 진짜 손으로 그린 그림인지 알 수가 없어 손에 침을 묻혀 살짝 문질러 보았다. 손 끝에 시꺼먼게 올라온다. 직접 그린 거다. 와~~ 속지 뒤를 보니 펜으로 눌러 그린 흔적이 보인다. 펀딩에 참여한 이들에게 그림 사인을 해 준 건 알고 있었지만 불특정 독자를 위해 이렇게 사인을 해주다니 놀라울 뿐이다. 출간된 책에 저자가 글씨를 쓴 건 봤어도 그림을 그린 건 처음이다. 그림 사인을 몇 권이나 한 것일까? 100권 사인을 한 경험이 있는 나로선 너무나도 궁금하다. 전화를 해 물어볼까? 안타깝게도 전화 번호에 저장이 돼있지 않다. (음... 친하진 않구나) 어쨌거나 참으로 귀한 책이다. 이런 작업.. 2023. 11. 17.